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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압구정동서 37년째 … 북한까지 소문난 평양만두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심식당 │ 만두집

이민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대표. [사진 해비치]

이민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대표. [사진 해비치]

소문난 미식가들이 가심비(價心比)를 고려해 선정한 내 마음속 최고의 맛집 ‘심(心)식당’. 이번엔 해비치호텔&리조트의 이민(사진) 대표가 추천한 ‘만두집’이다.

이 대표는 2014년 셰프로선 처음으로 특급호텔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서울·제주를 오가며 바쁘게 지내는 이 대표가 서울에서 근무할 때면 꼭 찾는 곳이 ‘만두집’이다. 이 대표는 “서울 본사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어머니가 빚은 듯 투박한 모양과 기교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만둣국 맛이 좋아 자주 찾는다”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매일 아침 직접 빚는 만두에는 소·돼지고기·채소로 만든 소가 꽉 차 있다. [전유민 인턴기자]

매일 아침 직접 빚는 만두에는 소·돼지고기·채소로 만든 소가 꽉 차 있다. [전유민 인턴기자]

신사동 압구정로데오역 6번 출구엔 두세 명이 겨우 지날 법한 좁은 골목이 있다. 이 골목에 ‘만두집’이 자리하고 있다. 평양 출신인 한동숙(2004년 작고)씨가 고향에서 즐겨 먹던 빈대떡·만둣국·비지 등을 팔기 시작한 게 1981년이다. 한씨는 북한에서 유명 축구 선수였던 남편 옥정빈(2004년 작고)씨와 함께 5남매를 데리고 51년 남한으로 내려왔다. 부부의 막내딸이자 현 만두집 사장인 옥혜경(70)씨는 “아버지는 북한 축구 대표로 실력이 뛰어나 김일성 주석이 좋아하는 선수로 꼽힐 만큼 유명했다”며 “나중에 건너 들었는데 부모님이 만두집을 열었을 때 북한에 ‘옥정빈 선수네가 남한에서 만둣가게를 한다’는 소문까지 났었다더라”고 말했다.

남한에서도 활발하게 선수로, 감독으로 활약했던 아버지 옥씨 때문에 축구 선수들과 협회 관계자들이 수시로 집을 찾았다. 그때마다 한씨는 직접 빚은 평양식 만두와 맷돌에 간 녹두로 부친 녹두전을 한상 가득 차려냈다. 한씨의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식당을 하라”고 권했다. 계속되는 권유로 결국 한씨는 “조그맣게 해보자”며 당시 개발이 한창이던 신사동에 작은 가게를 열었다. 다행히 한씨에겐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농구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한 막내딸 옥혜경씨다. 옥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지금까지 한결같이 가게를 지켜가고 있다. 손님이 늘어 기존 가게는 만두 빚는 곳으로 사용하고, 식당은 바로 옆 더 큰 공간으로 옮겼다.

‘만두집’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지만 이 집의 공식 상호는 ‘뉴만두집’이다. 식당의 세무처리를 해주던 세무사가 만두라는 대명사를 사용할 수 없어 앞에 ‘뉴’자를 붙여 상호를 등록한 것이다. 대표 메뉴는 만둣국이다. 지금도 어머니 한씨가 평양에서 빚었던 큼직한 크기를 그대로 유지한다. 직접 만든 반죽을 사이다병으로 민 만두피는 적당히 두툼하다. 여기에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숙주, 두부, 파 등을 섞은 소를 아낌없이 넣는다. 육수는 평양냉면처럼 맑다. 쇠고기 양지와 대파를 삶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낸 육수는 특유의 구수함과 대파의 단맛이 잘 어우러진다.

한 자리에서 37년 넘게 장사를 한 만큼 만두집을 다녀간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평양 출신 주인장의 손맛을 통해 향수를 달래려는 북쪽 실향민과 그 가족들은 만두집의 대표 단골들이다. 두살 때 어머니 품에 안겨 떠나온 고향이지만 옥씨도 고향인 평양 땅을 밟아볼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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