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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재명의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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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거대 기득권 ‘그들’의 이재명 죽이기가 종북·패륜·불륜몰이에 이어 조폭몰이로 치닫습니다.”

지난 21일 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폭력조직의 연루 의혹을 보도하기에 앞서 이 지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들’을 정조준하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방송은 이 지사가 2007년 폭력조직인 국제마피아파 일부 피고인의 변호를 맡았고, 성남시장 시절 조폭이 설립한 회사를 우수 중소기업으로 선정해 특혜를 줬다고 보도했다. 이 지사는 이에 대해 수천 건의 수임 사건 중 하나일 뿐이며, 해당 기업은 성남시의 혜택을 받은 게 없고 조폭과 연루된 줄도 몰랐다고 반박했다.

이 지사의 조폭 연루설이 맞을지, 아니면 그의 해명대로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조폭을 몰라봤던 억울한 피해자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꼭 짚고 싶은 것은 그의 해명에 노골적으로 드러난 ‘그들’ 프레임이다. 거대 기득권과 싸워 왔다는 자신의 정치인생을 내세워 지금 부당하게 핍박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지사는 정치판의 프레임 전쟁에 능하다. 성남시의 무상 복지 시리즈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는 지난 1월 본지 인터뷰에서 “난 엘리트주의자가 아니라 포퓰리스트”라고 당당히 말했다.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게 곧 정치고 포퓰리즘이라는 의미에서다. 자신이 왜 포퓰리스트가 아닌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프레임 자체를 깨버린 것이다. 반면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안철수 전 의원은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의도와 달리 ‘MB 아바타’임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며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것이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경쟁자의 프레임을 그 틀 안에서 반박하면 외려 그 프레임이 강화된다고 했다.

이 지사의 ‘그들’ 프레임은 성공할까. 김지하는 1970년 발표한 풍자시 ‘오적(五賊)’에서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과 장·차관을 비판했다. 한데 2018년 이 지사가 말하는 ‘그들’이 대체 누구인지 궁금하다. 인도에서 대통령에게 90도로 인사하는 재벌 오너도, 대통령 탄핵과 지방선거 대패로 빈사상태인 보수 야당도, ‘청와대 정부’에서 존재감 없는 장·차관도 거대 기득권으로 칭하기는 뭔가 부족하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난방열사’ 김부선과 소설가 공지영이 거대 기득권이란 말인가. 이 지사의 ‘그들’이 누구인지 나는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