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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판매 사기범에 오히려 5만원 건넨 천종호 판사

중앙일보

입력

천종호 부장판사(오른쪽), 5만원권 자료 사진. [송봉근 기자·연합뉴스]

천종호 부장판사(오른쪽), 5만원권 자료 사진. [송봉근 기자·연합뉴스]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부장판사가 인터넷 물품 판매 사기를 저지른 가해자에 5만원을 건넨 사연을 소개했다.

현재 부산지법 형사 단독 사건 판결을 맡고 있는 천 부장판사는 23일 페이스북에 “마음이 참으로 아픈 오늘, 25세의 청년이 법정에 섰다”며 “이 청년은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20세가 되어 보육원에서 나왔다. 많지 않은 자립정착금을 손에 쥐고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지만 원했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부산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생계를 이어나가기가 어렵게 되자 이 청년은 인터넷 물품 판매 사기를 저질러 재판을 받게 됐고, 사기 피해액수는 적은 편이었다고 천 부장판사는 전했다.

초범인 이 청년은 현재 월 19만 원짜리 고시텔에 머무르고 있었다. 청년은 또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 건강을 많이 해쳤는데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이 반성도 하고,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판결을 내린 천 부장판사는 “선고 후 마음이 아파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청년이 다시 법정에 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청년에게 주면서 ‘일단 이 돈으로 식사라도 해’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천 부장판사는 “제 휴대폰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돈이 떨어지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돈을 더 많이 주지 않은 이유는 그래야만 제게 연락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그것을 계기로 청년과의 소통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정을 떠나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는 이 법정에서 만나지 않기를 기원했다. 13년 전 형사 단독 사건을 처리할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된다”며 “이 땅의 모든 청년이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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