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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8·9등이 기금본부장 … 관치에 멍드는 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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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북 전주시의 국민연금공단 본부.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의 국민연금공단 본부. [연합뉴스]

2015년 10월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재임 중 중도 사퇴했다. 모양새는 자진 사퇴였지만 정부 압박에 떠밀렸다. 최 이사장 사퇴는 ‘관치 인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기금운용본부장(CIO)은 임기 2년에 1년을 연장할 수 있다. 당시 홍완선 본부장의 임기 1년 연장을 두고 최 이사장은 큰 상처를 입었다.

위기의 국민연금<상> 인사 문제점 #“청와대가 인사권 틀어쥐고 개입 #역대 본부장 7명 대부분 관치 인사” #현 정부에선 1위 곽태선 탈락 논란 #“운용위, 금통위처럼 전문가 기구로”

연금공단은 홍 본부장의 국제적 감각과 리더십 부족을 이유로 연장을 거부했다. CIO 임명은 복지부 장관 승인이 필요하지만 연장은 공단 이사장의 권한이라고 맞섰다. 복지부는 연장도 장관 승인이 필요하다며 최 이사장의 사퇴를 압박했다. 연금공단 관계자는 “당시 복지부가 ‘기금본부장의 연임이 청와대의 뜻’이라고 못 박았다”고 말했다. 당시 내막을 잘 아는 고위 관계자는 “국회의원 2명이 강하게 홍 본부장의 연임을 밀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CIO &#39;관치 인사&#39; 논란의 중심에 선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중앙포토]

국민연금 CIO &#39;관치 인사&#39; 논란의 중심에 선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중앙포토]

관치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번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파동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월 말 CIO 공모 전에 지원을 권유하는 전화를 했다. 연금공단 김성주 이사장이 장 실장에게 추천했고, 장 실장이 ‘보증수표’처럼 보이게 하려고 곽 전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중도 사퇴한 강면욱 전 본부장도 공모 전부터 내정설이 강하게 돌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고교(대구 계성고)·대학(성균관대) 1년 후배라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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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본부장은 지난해 5월 과거 여러 곳의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K씨를 해외대체실장으로 임용했다. 임용 한 달여 만에 K씨의 경력이 ‘부적격’으로 판정돼 임용 취소됐다. 강 전 본부장도 2개월 후 사퇴했다.

연금공단 전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7명의 CIO 중 관치 인사가 아닌 사람이 거의 없다”며 “어떤 본부장은 청와대가 공모 절차가 진행되는 중간에 낙점해 CIO가 됐다”고 말했다. 과거 공모에서 최종 3배수 후보에 오른 한 지원자는 “형식은 공모였지만 실제로는 나중에 내정해 놓은 상태로 판명되더라. 차라리 그럴 거면 청와대가 임명하는 게 낫지 뭐 하려고 공모하는지 모르겠다. 관치 인사가 망친다”고 비판했다.

연금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홍완선 전 본부장은 서류전형 점수가 8위, 강면욱 전 본부장은 9위였다. 곽태선 전 대표는 전형 점수 1위였지만 ‘정권 코드’에 안 맞은 건지, 병역 하자가 추후 발견돼서인지 석연찮은 이유로 ‘부적격’ 처리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기금운용본부 고위직을 지낸 A씨는 “청와대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나름 내부에서 암투를 하다가 찍어서 내려보내고, 그 사람이 ‘보은 투자’를 한다”고 말했다. 전직 운용직 B씨는 “재직기간에 본부장이 4명 바뀌었다. 평균 2년도 안 됐다. 정치색 없는 사람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금운용의 독립성 강화를 주문하지만 방법이 다양하다. 전광우 전 연금공단 이사장은 “기금운용위원회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현직 차관 4명이 들어간다. 정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장·차관이 아닌 추천 전문가가 참여하는 상설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기금본부를 연금공단에서 떼내 독립공사로 만들려고 추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반대했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을 전문가로 바꾸고, 인사·예산권을 CIO에게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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