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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김정은이 방중 때 탄 ‘1호 열차’도 중국 기관차가 끌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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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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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 했을 때 이용한 특별열차. 붉은색 기관차가 러시아의 디젤 기관차 ‘TEP 70’형이다. [중앙포토]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 했을 때 이용한 특별열차. 붉은색 기관차가 러시아의 디젤 기관차 ‘TEP 70’형이다. [중앙포토]

남북 간에 철도 연결 논의가 한창입니다. 기존에 연결했던 경의선과 동해선 구간을 점검하고, 북한 내 주요 철도에 대한 현장 파악도 한다고 하는데요. 이런 단계를 거쳐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고, 국제적인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본격적으로 남북 철도 연결 공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종단철도(TKR)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등과 이어져 대륙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서울·부산에서 기차 타고 유럽 가자”는 말은 이런 기대감에서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남·북·러·중 전력 방식 제각각 #철도 신호와 통신,언어도 달라 #중·러 갈 땐 기관차 교체해야 #김정일도 러기관차로 두번 방러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게 있습니다. 서울이나 부산에서 출발한 우리 열차가 그대로 대륙철도를 달려서 유럽까지 갈 수 있을까요? 남북·대륙 철도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인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물었습니다. 답은 “아니다”였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요. 우선 KTX처럼 전기로 달리는 전철의 경우 남과 북은 물론 러시아, 중국 등이 모두 전력공급 방식이 다릅니다. 직류, 교류로 나뉘고 전압도 제각각인데요. 기관차 한 대로 이들 구간을 별 탈 없이 다 달릴 수는 없다는 얘기인 겁니다.

그럼 디젤기관차로 달리면 어떠냐고요? 여기에도 장벽이 있습니다. 국가마다 철도 신호체계와 무선통신 주파수, 사용 언어 등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조금이라도 착오가 생기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운 부분들입니다. 유럽연합(EU)처럼 통합 작업을 가속화하는 지역에서만 국가 간 열차 운행에 별 제약이 없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국경 지역에서 해당 국가의 기관차로 바꿔 다는 게 일반적입니다. 안 연구위원은 2001년과 2011년 두 차례 러시아를 열차로 방문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2001년 7월 ‘특별열차’ 편으로 북한을 출발해 러시아 하산, 하바로프스크, 이르쿠츠크,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다녀왔는데요. 대략 20여 일간의 일정이었습니다.

방러 당시 공개 된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 내부. [중앙포토]

방러 당시 공개 된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 내부. [중앙포토]

당시 이 일정을 소개한 책이 ‘동방특급열차’인데요. 푸틴 대통령의 전권특사로 임명돼 김 위원장을 수행한 콘스탄틴 보리소비치 풀리코프스키가 쓴 책입니다. 이 책에는 김 위원장이 탄 ‘특별열차’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나와 김정일이 정기적인 만남의 장소로 사용한 객차는 스탈린 대원수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첫 번째 지도자였던 김일성에게 선물한 것이다…객차들은 그저 평범한 일반 차량일 뿐 방탄용 철판이 깔린 것은 김정일 전용칸의 바닥뿐이었다.’

‘김정일의 전용 열차는 그의 러시아 방문 훨씬 이전부터 북한 측의  두만강역에서부터 하산역을 지나 우스리스크 시까지 수차례에 걸쳐 시운전을 했다…북한의 철도는 러시아의 철도에 비해 너비가 좁기 때문에 바퀴를 갈아 끼우는 작업이 병행되었다.’

남·북한과 중국은 철도 폭이 1435mm인 표준궤를 쓰는 반면 러시아는 이보다 넓은 광궤(1520mm)를 사용합니다. 이 때문에 양쪽 구간을 오가려면 바퀴 교체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내용이 하나 더 나옵니다. ‘북한 측 대표단을 위한 5량의 객차와 우리 측을 위한 7량의 객차가 한조로 편성되어 러시아 전역을 여행했다.’ 북한 측 객차에 러시아 측 객차를 연결했다는 의미인데요. 당시 이들 객차를 끌고 달린 기관차가 바로 러시아 기관차입니다.

안 연구위원은 “당시 러시아 철도 중에 전철화가 안 된 구간은 디젤기관차를, 전철화 구간에서는 전철용 기관차를 연결해서 달렸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북한 측 기관차는 두만강역에 두고, 러시아 기관차에 북한 객차만 연결해서 운행한 겁니다. 2011년 김 위원장이 열차 편으로 또다시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열차를 이용했는데요. 당시 열차도 중국의 단둥역에서 중국 측 기관차를 연결해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중국 기관차는 ‘둥펑 2호’로 ‘둥펑 1호’와 함께 중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열차를 탈 때 동원하는 기관차라는 게 안 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당시에도 중국 측 영접 인사와 경호팀 등을 실은 중국 측 객차도 여러 량이 연결됐는데요. 이 같은 방식을 잘 모르는 일본 언론 등에서 중국 객차를 촬영한 뒤 “김 위원장이 타지 않았다”고 보도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 또 다른 언론에서 북한 측 객차를 확인하고는 “김 위원장이 방중했다”는 다른 보도를 내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운행 중인 평양~북경 간 국제열차의 경우도 단둥역 또는 신의주역에서 기관차를 교체해서 달린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열차 그대로 유럽까지 가는 건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아예 환승하지 않는다면, 기관차는 국경 지역에 두고 객차만 다른 나라 기관차에 연결해서 가는 방식이 될 겁니다. 그래도 남한에만 갇혀 있던 철도가 북한을 넘어 대륙으로 이어진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크다는 생각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바퀴와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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