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12시 30분 대구 중구 약전골목의 삼계탕집. 초복(初伏)을 맞아 몸보신을 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날 대구의 최고기온은 37도까지 치솟았다. 손님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뜨거운 날씨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란 말을 실감케 했다.
태국에서 온 시타타인움(28·여)씨는 "한여름의 대구는 태국보다 더운 것 같다"며 "남편과 함께 삼계탕 한 그릇 먹고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민장수(30·대구 달서구)씨도 "밖에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라며 "요 며칠 폭염이 이어지면서 기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오전 전국 도심 주요 교차로에 설치된 '그늘막 쉼터'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햇볕을 피하기 위한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백승진(29·경기 분당시)씨는 "아침부터 너무 더워서 출근 전에 기진맥진할 것 같다"며 "주말에도 찜통더위라고 하니 집에서 쉴 것"이라고 했다.
더위에 동물들도 지쳤다. 대구 중구 달성공원에 사는 코끼리 부부는 차가운 물에 세 차례 샤워했다. 불곰은 몸에 털이 많아 물을 뿌리는 것만으론 '대프리카'의 더위를 이기지 못해 특식인 얼음과자를 먹었다. 사육사들은 우리에 차광막을 설치해 햇볕을 가려줬다.
경기 용인시의 에버랜드에서도 기린 가족이 얼린 과일을 먹으며 잠시나마 더위를 식혔다. 사자는 닭고기와 함께 매달린 물풍선을 터뜨려 차가운 물로 몸을 씻었다. 광주 우치동물원 호랑이는 소고기와 닭고기가 들어간 특식용 얼음과자를 먹었다.
기상청은 이날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를 내렸다. 낮 최고 기온은 서울 34도, 경기 수원 35도, 경북 포항·대구 37도, 강릉·광주 36도 등이다.
닷새째 폭염이 이어지면서 대구의 한 백화점에서는 스프링클러 센서가 더위를 화재로 오인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오후 1시쯤 현대백화점 대구점 지하 2층 동문 유리 쪽에 붙어있던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물이 백화점 내로 쏟아졌다. 백화점 1개 매장이 물에 젖었다. 이날 대구 낮 최고 기온이 36.4도까지 오르면서 백화점 유리 쪽 부근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센서가 작동한 것이다.
고열작업장에서는 근로자 건강 지키기에 나섰다. 경북 포항제철소에서는 16일부터 수면실 운영을 시작했다. 순회 진료도 시행한다. 진료팀은 주 2~3회 현장을 방문해 근로자의 건강상태를 상담하고 의약품을 처방한다. 운전실과 고열작업장 등 현장에는 작업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1000여 개의 제빙기와 냉온수기가 마련됐다. 대구 성서공단의 한 공장에서는 이날 수박과 삼계탕이 점심 메뉴로 나왔다.
각 지자체에서 준비한 더위 대책도 시행 중이다. 도심에서는 물을 안개처럼 분사하는 ‘쿨링 포그’가 시민들의 더위를 식혔다. 도로에 물을 뿌리는 ‘클린 로드’도 가동에 들어갔다.
도심 근교 캠핑장과 서울 한강 일대에는 열대야를 피하려는 텐트족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김지은(24·대구 수성구)씨는 "밤에 강아지를 데리고 근처 캠핑장에라도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