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 내" 속도내는 유해송환, 딸려 올 北 청구서는 종전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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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숨진 미군 유해 송환과 관련한 북미 실무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 16일 오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으로 미군 차량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쟁 때 숨진 미군 유해 송환과 관련한 북미 실무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 16일 오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으로 미군 차량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군 전쟁 포로와 전쟁 실종자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위한 북·미 간 협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미 CNN 방송은 15일(현지시간) 미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약 200구의 유해를 2~3주 내에 송환하기 위해 북·미가 노력하고 있다”며 “송환 시기는 예고 없이 바뀔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15일 유엔사와 북한의 장성급이 만나 협의한 데 이어 북·미는 16일에도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을 이어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5일 성명을 통해 “이미 발굴된 유해의 송환 문제를 포함, 다음 조치를 조율하기 위한 미국과 북한 관료들의 실무급 협의를 16일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한 데 따른 것이다.

실무급 협의에 미 측은 유엔군 사령부의 영관급 장교, 북측은 인민군 소속 동급 장교를 각기 보냈다고 한다. 1차적인 송환 시기와 절차, 방법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성명에서 “양 측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약 5300명의 미국인 유해를 찾기 위한 현장 발굴 작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도 밝혔다. 유해 송환이 성사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12 정상회담 뒤 서명한 공동성명이 처음 이행된다는 의미가 있다. 공동성명 4항은 ‘미국과 북한은 이미 확인된 미군 전쟁포로와 전쟁 실종자 유해의 즉각 송환을 포함해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했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를 각별히 여기는 미국의 정서를 고려할 때 북측의 유해 송환은 북·미 간 신뢰 구축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도 ‘(양 측은)상호 신뢰 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유해와 함께 올 ‘청구서’가 문제다. 북한 외무성은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직후인 지난 7일 이미 청구서의 윤곽을 공개했다.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다방면적 교류 실현 ▶정전협정 체결 65돌을 계기로 한 종전선언 발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생산 중단의 물리적 확증을 위한 대출력발동기시험장 폐기 ▶미군 유골발굴을 위한 실무협상의 조속한 시작 등을 토의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광범위한 행동 조치들을 각기 동시적으로 취하는 문제’라고 표현했다. 이는 유해 발굴·송환과 동창리미사일시험장(대출력발동기시험장) 폐기는 종전선언 및 북·미 교류와 동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공을 들이고 있는 종전선언과 관련, 7월 27일이 정전협정 체결일이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정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미군 유해를 보내고 9월 유엔총회 때 남·북·미 정상이 모여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북한의 계획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은 아무래도 종전선언을 원하고, 장성급 회담을 통해 물꼬를 트려는 것 같지만 미국 입장에선 비핵화 조치가 전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유해 송환이나 ICBM 능력 제거 등 미국 이해만 충족되고 더는 제재는 작동하지 않는다면 한국에 대한 안보 위협 해소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해 송환 협상은 속도를 내고 있지만 비핵화 협의에선 북·미 간 이견이 여전하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16일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당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비밀 핵시설 가동 문제를 제기했으나 북 측은 전면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는 취지의 언급까지 하며 비핵화 조치의 조기 착수를 요구했지만, 김 위원장은 구체적인 비핵화 공정표는 제시하지 않은 채 종전선언의 조기발표만 요구했다는 것이다. 요미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결과를 보고받고 이대로 협상을 계속해야 할지, 압력을 강화해야 할지 물었고 폼페이오 장관은 ‘판단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도쿄=서승욱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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