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협 기대감에 … 은행, 북한 전문가 모시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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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은행들의 ‘북한 전문가 모시기’가 한창이다. 남북 간 경제협력 가능성이 가시화하면서 은행들이 북한 관련 사업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도로건설에 금융지원 필요 #수출입·하나은행은 이미 채용 #KB·IBK 등도 석·박사 뽑는 중 #대학 관련학과에도 문의 쏟아져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최근 본사 전략기획부에서 근무할 북한 전문가를 채용한다고 공고했다. 채용 인원은 1명으로 북한개발협력 분야나 관련 금융연구기관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가 대상이다.

 국민은행은 이달 31일까지 원서 접수를 받고 서류전형ㆍ면접 전형ㆍ연봉협상ㆍ신체검사 등의 채용 절차를 마친 뒤 9월 초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 공고를 내고 북한 전문가를 채용한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 홈페이지 캡쳐]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 공고를 내고 북한 전문가를 채용한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 홈페이지 캡쳐]

 향후 사회간접자본(SOC)사업 등 북한과 관련해 진행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 기회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채용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에 북한 전문가가 없어 채용하게 됐다. 은행과 별도로 KB금융지주 차원에서도 KB경영연구소 산하 북한금융연구센터에 인력을 확충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IBK기업은행도 IBK경제연구소 내 북한경제연구센터에서 근무할 박사 학위 소지자 1명을 뽑고 있다. 합격자는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다. 남북경협, 북한 경제ㆍ금융 등을 주로 연구한다.

 KEB하나은행 산하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달 1명을 신규 채용해 3명의 북한 관련 전문 연구원이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수출입은행도 이달 초 북한ㆍ동북아연구센터 소속 박사급 북한 전문가 인력을 2명 신규 채용했다.

 서준영 수출입은행 차장은 “북한ㆍ동북아연구센터는 남북 관계 악화로 소속 인력을 많이 줄였다가 최근 남북 경협 기대감이 커지면서 다시 인력을 늘리고 있다”며 “앞으로도 추가 채용이나 은행 내부 인력 이동 등을 통해 몸집을 불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사진 국정기획자문위워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사진 국정기획자문위워회]

 하반기 조직 개편 때 북한 관련 조직을 신설한 은행도 채용에 나설 수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하반기 조직개편을 통해 전략기획부 산하에 ‘남북경협랩(Lab)’을 신설했다. 앞으로 개선될 남북 관계에 대비해 북한 시장 동향과 신규 사업 진출 가능성 등을 연구하는 게 주 업무다.

 KDB산업은행 역시 최근 기존 통일사업부를 한반도신경제센터로 바꾸고 그 아래 남북경협연구단을 신설했다. 이곳에서 남북경협과 북한개발금융 등 한반도 신경제 구상 관련 연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북한 전문가 채용이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장은 “최근 북한 전문가를 찾는 금융회사가 늘기는 했지만, 아직 그 숫자가 많다고 보긴 어렵다”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처럼 향후 남북경협 물꼬가 확 터지면 인력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금융사로부터 ‘지금이 북한 전문가들을 뽑아야 할 시점이냐’ 는 질문을 부쩍 많이 받고 있다”며 “금융사 중에서도 경협 재개시 바로 북한에 가 영업을 시작해야 하는 은행들이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개성지점 [중앙포토]

우리은행 개성지점 [중앙포토]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전까지 개성공단 지점을 맡아 운영했던 최호열 우리은행 지점장은 “은행은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 관광 등만 재개돼도 이동점포ㆍ환전소 등 영업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지금 북한에 개성공단 같은 경제특구가 수십 개인데 이곳에만 점포를 열어도 좋은 영업 기회를 확보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철도나 항만,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사업에 참여해 금융을 제공하는 것도 은행의 역할이 될 수 있다. 최 지점장은 “북한 개방 정도에 따라 대규모 건설사업 등 상당한 자금이 있어야 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라며 “남북 경제공동체가 현실화한다면 북한 주민이나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거나 북한에 새로운 은행을 설립하는 등 선진 금융을 심어주는 역할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6월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두 발언 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6월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두 발언 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AP]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 경협을 둘러싼 환경이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우호적”이라며 “만일 국제 제재가 풀리고 남북 경협이 본격화한다면 속도가 상당히 빠를 것으로 보여 은행들의 북한 전문가 수요도 더 빠르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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