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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투수의 짜릿함을 알아가는 한화 이태양

중앙일보

입력

"감독으로서 고맙고 미안하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8일 인천 SK전이 끝난 뒤 불펜투수 이태양(28)에게 고맙다고 했다. 2와3분의1이닝 무실점 호투로 연패에 빠진 팀을 구했기 때문이다. 이태양은 한화 불펜의 보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일 인천 SK전 2.1이닝 무실점 호투 #선발 경험 덕에 긴 이닝도 잘 소화

한화는 2회 넉 점을 뽑아내며 4-0으로 앞서갔다. 하지만 선발 김민우가 6회 말 로맥과 최정에게 연속타자 홈런을 내주면서 4-2로 쫓겼다. 이어진 공격에서 2사 만루가 되면서 전날 역전패가 재현될 수도 있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한용덕 감독의 선택은 우완 이태양이었다. 이태양은 나주환을 3루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해 고비를 넘겼다.

7회에도 등판한 이태양은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노수광과 한동민을 땅볼로 처리한 뒤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날린 로맥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8회에도 마운드는 이태양이 지켰다. 최정을 1루수 파울플라이로 잡아낸 뒤 김동엽을 삼진, 이재원을 2루 땅볼로 처리했다. 9회엔 마무리 정우람이 나서 5-2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태양은 "로맥과 최정은 힘있는 타자지만 실투만 던지지 않으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던졌다"고 했다. 한 감독은 긴 이닝을 던지며 잘 버틴 이태양에게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구위가 워낙 좋아 밀고나갔다"며 고마워했다.

6월 6일 LG전이 끝난 뒤 주먹을 맞대는 이태양(가운데)와 한용덕 감독. [연합뉴스]

6월 6일 LG전이 끝난 뒤 주먹을 맞대는 이태양(가운데)와 한용덕 감독. [연합뉴스]

이태양의 포크볼이 위력을 발휘했다. 김동엽을 삼진으로 잡아낸 결정구도 포크볼이었다. 이태양은 "지난해와 올초엔 포크볼이 안 먹혔다. 송진우 투수코치님이 여러 그립을 보여주면서 '너무 많이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 타자 방망이에 정확하게 맞지 않는 것에 신경쓰자'고 조언해 준 덕분에 좋아졌다"고 말했다.

사실 시즌 초반만 해도 이태양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2014년 이후 줄곧 선발로 뛰었지만 구원투수로 보직을 변경해야 했다. 시범경기 내용은 최악이었다. 3경기에서 3과3분의2이닝 동안 6실점(2자책)했다. 결국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한용덕 감독은 "공격적인 투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개막 일주일 만에 1군에 올라온 이태양은 달라졌다. 추격조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이기는 경기에 나가는 비중이 늘어났다. 4월엔 8경기에 나가 승이나 홀드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5월엔 10경기서 1승, 1홀드를 올렸다. 6월엔 13경기에서 1승4홀드를 올렸다. 35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2승6홀드, 평균자책점 2.72. 이젠 이태양이 없는 한화 불펜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1과3분의1이닝 이상을 던진 경기도 14번이나 된다. 이태양은 "선발로 던졌기 때문에 긴 이닝을 던지는 건 문제없다. 사실 처음에 1군에 왔을 땐 '하루만 버티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일주일만 버티자'가 됐고, 여기까지 왔다. 팀 분위기가 좋고 나도 성적에 힘을 보탠 것 같아 즐겁다. 우리 선수들 모두 야구장 나오는 걸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날 경기에서 이태양은 이닝을 마무리하면서 살짝 주먹을 쥐었다. 그는 "너무 동작이 크면 동료들이 놀릴 거 같아서였다"고 웃으며 "게임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표현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불펜투수의 매력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승리투수가 된)민우가 '고맙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선발했을 때 그런 고마움을 느꼈거든요. 선발투수의 승리를 지키고 위기를 넘기는 순간이 짜릿해요. 선발 때는 못 느꼈던 기분이죠."

인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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