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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이번엔 응급실 폭행 … 음주범죄 봐주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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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준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준희 내셔널팀 기자

김준희 내셔널팀 기자

한 남성이 흰색 가운을 입은 남성의 얼굴을 팔꿈치로 때린다. 맞은 남성이 바닥에 주저앉자 머리채를 잡고 흔들더니 얼굴에 킥까지 날린다.

미국 프로레슬링 경기나 이종격투기 장면이 아니다. 지난 1일 오후 9시 30분쯤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의사를 폭행한 실화다. 병원 폐쇄회로TV(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가해자는 이날 손가락이 부러져 병원을 찾은 임모(46)씨다. 만취 상태에서 넘어져 다쳤다고 한다. 피해자는 임씨를 치료하던 병원 응급의료센터장 의사 이모(37)씨다. 의사 이씨는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다. 임씨는 술이 깬 뒤엔 “의사에게 미안하다”고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에게 폭행당한 이씨는 “너무 두렵다”며 패닉에 빠진 상태다. 경찰은 임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5일 상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만취자는 위험하다. 통계로도 드러난다. 경찰청의 2016년 범죄 통계에 따르면 살인 범죄자 995명 중 ‘주취(酒醉)’로 분류되는 사람은 390명으로 40%에 달했다. 지난 5월엔 전북 익산소방서 인화119구조센터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위가 자신이 구한 40대 취객에게 맞은 지 한 달 만에 숨지는 비극이 있었다.

대한응급의학회와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응급실 폭행 후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했다. 현행법상 구조·구급 활동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지만, 현실에선 응급실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아서다.

‘주취 감형 폐지’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주취 감형 폐지 청원’에는 21만 명이 참여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음주를 심신장애 범주에서 제외하는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협은 “의료인 폭행은 결국 국민의 진료권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의사와 119구급대원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이들이 무너지면 국민은 더 큰 위험에 빠진다. 주취 폭력은 지금보다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번과 같은 응급실 폭행 사건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처벌 강화와 더불어 응급실에 경찰이나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건이 난 뒤 엄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병원을 안전한 장소로 만드는 게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이익이다.

김준희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