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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별에서 온 그대, 런닝맨, 시크릿 가든이 사랑한 그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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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기도 가평의 쁘띠프랑스는 ‘작은 프랑스’라는 이름처럼 프랑스풍의 테마파크다. 어여쁘고 이국적이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오늘은 대표적인 한류 명소다. [사진 쁘띠프랑스]

경기도 가평의 쁘띠프랑스는 ‘작은 프랑스’라는 이름처럼 프랑스풍의 테마파크다. 어여쁘고 이국적이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오늘은 대표적인 한류 명소다. [사진 쁘띠프랑스]

경기도 가평의 테마파크 ‘쁘띠프랑스’가 오는 25일 개관 10주년을 맞는다. 의외라는 독자가 있을 법하다. 하얗고 빨갛고 노란 뾰족지붕 집들의 풍경이 오래전 기억처럼 익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쁘띠프랑스는 동화 속 마을을 빼닮았다. 아니, 동화 속 풍경화가 책 밖으로 걸어 나온 듯하다.

한류 명소 쁘띠프랑스 개관 10주년 #한 사업가가 40년 벼른 꿈의 현장 #국내 유일의 ‘어린 왕자’ 문화 공간 #100년 된 6500만원짜리 오르골도

열 돌을 맞아 동화마을 쁘띠프랑스의 숨은 동화 몇 편을 들려드린다. 지난 10년 600만 명이 마을에 들어왔지만, 하나같이 사진만 찍다 돌아간 사정이 안타까워서다. 보아뱀을 삼킨 구렁이처럼, 중요한 건 원래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참, 이 숨은 동화는 소혹성 B612에서 불시착한 한 어린아이의 이야기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 아이가 없었으면, 오늘의 동화 같은 풍경도 없었을 터이다.

쁘띠프랑스를 손수 일군 한홍섭 회장. 프랑스에서 직접 구해온 물건으로 동화마을을 가꿨다. [손민호 기자]

쁘띠프랑스를 손수 일군 한홍섭 회장. 프랑스에서 직접 구해온 물건으로 동화마을을 가꿨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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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별에서 왔니?=쁘띠프랑스는 대표적인 한류 명소다. 수많은 TV 프로그램이 촬영됐고, 프로그램을 시청한 수많은 외국인이 찾아왔다. 쁘띠프랑스가 제일 먼저 출연한 TV 드라마가 ‘베토벤 바이러스’다. 드라마가 2008년 9∼11월 방영됐으니, 문을 열자마자 방송을 탄 셈이다. 쁘띠프랑스가 오래된 추억의 장소 같은 오해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잊을 만하면 쁘띠프랑스는 TV에 얼굴을 내밀었다.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덕분이다. ‘런닝맨’은 2011년부터 최근까지 4번이나 쁘띠프랑스에서 촬영했다. 중국판 ‘런닝맨’도 성지 순례하듯이 쁘띠프랑스를 방문했다. 한국과 중국의 런닝맨 12명이 쁘띠프랑스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2010년 방영된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도 생각난다. 동화 같은 이야기가 동화 같은 풍경과 포개지듯 어울렸다.

쁘띠프랑스의 마스코트 ‘어린 왕자’. 조형물이 곳곳에 있다. [사진 쁘띠프랑스]

쁘띠프랑스의 마스코트 ‘어린 왕자’. 조형물이 곳곳에 있다. [사진 쁘띠프랑스]

그래도 ‘별에서 온 그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2014년 2월 27일 종영한 이 드라마 덕분에 쁘띠프랑스는 명실공히 국제 명소로 거듭났다. 계산은 이상한 어른이나 하는 짓이지만, 숫자를 봐야 안심하는 독자를 위해 알린다. 쁘띠프랑스의 2013년 외국인 입장객은 7만 명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된 직후인 2014, 2015년엔 2년 연속 50만 명을 기록했다. 외국인 입장객의 80%가 중국계(중국·대만·홍콩)였다. 2016년 이후 한한령 여파로 외국인 입장객이 줄었다 해도 여전히 1년에 40만 명 정도가 들어온다.

TV 프로그램은 왜 쁘띠프랑스를 선호할까. 답은 쉽다. 예뻐서다.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시쳇말로 ‘그림이 된다’. 호명산 기슭에 걸터앉아 청평호수를 내려다보는 쁘띠프랑스는, 프랑스 남부지방의 전원도시 모양 앙증맞고 어여쁘다. 말하자면 낯선 아름다움이다.

‘별에서 온 그대’가 쁘띠프랑스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예뻐서만이 아니다. 쁘띠프랑스의 마스코트가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별에서 온 그대’다. 어쩌면 인연이다.

쁘띠프랑스는 밤에 더 예쁘다. [사진 쁘띠프랑스]

쁘띠프랑스는 밤에 더 예쁘다. [사진 쁘띠프랑스]

◆가짜 같은 진짜=쁘띠프랑스가 예쁜 이유를 이해하려면 한 아이를 알아야 한다. 동화마을의 아이는 다만 나이가 한참 들었다. 한홍섭(72) 회장.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던 기업인이다.

그는 40년 넘게 페인트 사업을 했다. 덕분에 남다른 색감을 갖게 됐다. 쁘띠프랑스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했지만, 색깔만큼은 한 회장이 직접 결정했다. 어린 왕자가 아침저녁으로 소혹성의 꽃을 돌보듯, 한 회장도 날마다 쁘띠프랑스를 가꿨다.

한 회장은 1970년대부터 유럽 출장이 잦았다. 유럽 문화, 그중에서도 프랑스 문화가 그렇게 좋았다. 그리고 아이처럼 꿈을 꿨다. ‘프랑스 시골 마을을 우리나라에 옮기고 싶다.’ 한 회장은 벼룩시장·갤러리·전시회·박람회 등을 돌며 예쁜 것을 사 모았다. 그림·조각품·오르골·그릇·인형·가구 등 구입 목록에 제한은 없었다. 기준이라면 ‘예쁜 것’이었다. 예쁘고, 처음이고, 교육적이면 값은 따지지 않았다.

이윽고 가평 청평호숫가에서 마침맞은 땅을 찾았다. 호명산 기슭 약 46만㎡(14만평) 면적의 땅을 구했고, 약 13만㎡(4만평) 대지에 프랑스풍의 집 23동을 지었다. 집집이 한 회장이 구한 물건이 차곡차곡 쟁여졌다.

“요즘도 1년에 서너 번씩 프랑스에 갑니다. 70년대부터 드나들었으니, 100번은 훨씬 넘겠네요. 한 번 나갈 때마다 1억원 정도 쓰는 것 같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이 다 들어갔네요. 전시품이 몇 개인지는 나도 몰라요.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어요.”

문득 궁금하다. 한국 땅에 들어선 프랑스풍의 시골 마을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한 회장은 쁘띠프랑스를 개장하기에 앞서 프랑스의 생텍쥐페리재단과 제휴를 맺었다. 생텍쥐페리(1900∼?)의 『어린 왕자』를 한국에 제대로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쁘띠프랑스는 생텍쥐페리재단과 정식 제휴를 맺은 국내 유일의 문화 공간이다. 기사에서 『어린 왕자』의 글귀를 여러 번 빌린 건, 어린 왕자의 시선에서 이 동화 마을을 바라보길 바라서였다. 그래야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보인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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