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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키운 채소가 밥상 오를 땐 조물주된 기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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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24)

요즈음도 심심풀이로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는데 어떤 이는 나를 조리사로 안다. 왜냐하면 한동안 페이스북 대문에 조리모를 쓴 사진을 걸어 뒀기 때문이다. 영락없는 조리사 모습이라 외국 친구들은 뜬금없이 쉐프 그룹에 나를 초대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에 올라간 글의 상당수가 음식 사진으로 채워져 있는 것도 오해를 부른다. 만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일일이 쓰기도 그렇고 남의 사정을 공개하기도 그래서 함께 먹은 음식 사진만 올렸으니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다녀도 결국 남는 건 음식과 사진이다.

도시 식당 vs 시골 식당 

시골 식당에서 먹었던 한상. [사진 김성주]

시골 식당에서 먹었던 한상. [사진 김성주]

내가 찍은 음식 사진을 보니 전국의 먹거리가 다 모여 있다. 그래 봐야 밥과 국, 반찬이 전부지만 메뉴를 보면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가끔 짜장면이 찍혀 있으면 바쁜 길에 먹은 점심이고, 고기 굽는 사진이 있으면 술꾼과 만난 것이다.

상 위의 반찬이 소박하면 농가에서 얻어먹은 점심이다. 상 위에 상추가 유독 많이 올려져 있으면 시골 식당이다. 도시의 식당은 반찬 그릇이 화려하고 시골의 식당은 그릇이 투박하다. 대체로 찌개가 중간에 크게 자리 잡으면 시골 밥상이고, 찌개가 사람마다 놓여 있으면 도시 밥상이다.

농촌의 풍경도 달라졌다.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정에서 점심을 먹는 풍경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교육생 모두가 집에서 반찬과 밥을 바리바리 싸 와서 나눠 먹었다. 철마다 달라지는 특산물과 집에서 키우는 채소나 과일을 먹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지금은 근처 식당으로 달려간다. 함께 음식을 나누던 점심이 외식으로 바뀌었다.

한참 요즘같이 농사일이 바쁜 철엔 새참이 어떠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나도 궁금하다. 근래 시골에서 새참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집에서 먹거나 배달시켜서 먹는다. 대부분 새벽에 나와 해가 뜨겁기 전까지 일하고 점심에는 집으로 갔다가 오후 4시 넘어 다시 밭으로 가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요즘 풍경이다.

점심시간엔 식구 외에 외국인 노동자에게 무엇을 먹여야 하나 고민해야 한다. 농가 일손이 모자라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쓰는 경우가 부쩍 늘었는데, 점심 끼니 주로 주변 식당에 전화해 배달시켜 먹는다. 한낮에 옥수수나 감자를 쪄 새참으로 먹는 것은 이제 옛날얘기가 됐다.

과수원에서 꽃 수정 작업을 하던 주민들이 새참으로 자장면을 시켜 먹고 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새참을 만들어 먹지 않고 집에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는다. [중앙포토]

과수원에서 꽃 수정 작업을 하던 주민들이 새참으로 자장면을 시켜 먹고 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새참을 만들어 먹지 않고 집에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는다. [중앙포토]

귀농·귀촌을 하면 모두가 자그만 텃밭을 일구어 신선한 채소를 뜯어 먹고, 유기농 과일을 즐기며 저녁이면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이며 사는 줄 안다. 가끔 그런 사람도 있기는 하다. 텃밭이 아무리 작더라도 벌레가 낄까 봐 신경이 쓰이고, 며칠 자리를 비우면 들짐승이 다 파헤쳐 버린다. 유기농 과일은 도시 사람에게 팔려고 내놓고 잘 먹지 않는다.

바비큐 파티도 몇 번 하다 보면 지겹다. 아들과 며느리가 손주를 데리고 오면 이것저것 바비큐 그릴과 숯을 준비하며 폼을 잡지만 솔직히 읍내 삼겹살집이 더 편하다. 도시 생활이나 시골 생활이 비슷하다. 고기라도 마음 놓고 연기 피우면서 구울 수 있으니 다행이긴 하다. 또 하나 시골은 마당이 있어 장독과 김칫독을 놓을 수 있으니 좋다. 그래도 김치냉장고는 있어야 한다.

‘I am what I eat’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뜻이다.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하는데, 내가 먹는 음식이 사회관계망 속에서 나를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골살이하면 유기농과 웰빙 음식은 물론 사시사철 제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지역적으로 획일화된 농산물과 대량 생산되는 축산물 덕에 도시나 농촌이나 비슷비슷한 음식을 먹게 되니 나의 정체성은 음식 속에서 모호해진다. 축구 경기를 보면서 딱히 치킨과 맥주밖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것도 희한하지만 현실이다.

그래도 인생의 재미는 무엇보다 먹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 세끼 무엇을 먹는지 따져 가며 사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적어도 내가 열심히 농사지어 일구어낸 식재료라면 아까워서라도 제대로 조리해 먹게 된다. 밥상 위 음식들이 모두 내가 만든 것이라면 조물주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며 숟가락과 젓가락 한술 한술이 뜻깊지 않겠는가.

우유를 마시며 소에게 미안해하는 농심

시골 사람에게 식재료는 농부의 손길과 내 손길이 더해져 다가온 음식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중앙포토]

시골 사람에게 식재료는 농부의 손길과 내 손길이 더해져 다가온 음식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중앙포토]

역시 부지런해야 잘 먹을 수 있다. 텃밭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손수 잡초를 뜯어 가며 일구고, 밭작물, 과수원의 과일은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마당의 암탉이 매일매일 선물하는 달걀은 그 온기에 감사해 하고, 슈퍼에서 산 우유는 제 새끼한테 줄 것을 사람에게 내어 주니 소에게 미안해한다. 이게 농심이다.

은퇴해 도시에서 농촌으로 간 사람은 대개 삼시 세끼를 직접 해 먹는다는 것이 대견하다고 한다. 그동안 회사에서, 공장에서, 학교에서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면 시골은 식재료를 내가 만들거나 주변에서 구하는 것이 다르다. 특히 산으로 가면 이름도 몰랐던 잡초가 맛있는 나물로 다가오니 놀랍다.

단지 마트가 멀어 신선한 식재료와 식품을 구해 오지 못해 자급자족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말처럼 내 생활을 내가 꾸려 나가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지금 내 손에 삼겹살과 상추가 놓여 있다.

도시 사람에게는 어느 마트와 어느 슈퍼에서 온 식재료이겠지만 시골 사람에게는 어느 농부의 손길과 내 손길이 더해져 다가온 음식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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