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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를 정부가 독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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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마 전 재정경제부는 통계법 개정안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했다. 그것의 주요 골자는 중요한 통계를 만드는 민간기관을 정부가 직권으로 '통계작성 지정기관'으로 선정하고, 해당 민간기관이 통계를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단계별 점검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는 것 등이다. 요컨대 정부 당국에 민간기관의 통계를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이런 식으로 통계법을 고치겠다는 발상이 우선 선진국의 경우 유례가 없기도 하거니와 노무현 정부의 행태와 관련해 특히 꺼림칙하고 미심쩍게 보이는 까닭은 정부 통계의 정확성과 신뢰성에 잇따라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요 근래의 상황 때문이다. 최근에도 재정규모를 둘러싸고 중앙일보와 기획예산처 사이에 '진실공방'이 벌어졌지만 통계와 관련된 구설수는 현 정부에 들어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정부 부서 간에 서로 수백만 가구나 차이가 벌어지는 주택보유 현황 통계가 제시되는 나라, 비정규직 근로자 통계를 잘못 작성해 주무 장관이 사과하는 나라, 전국 토지소유자의 비율이나 강남북 학생의 서울대 진학률에 관한 엉터리 발표를 같은 정부기관인 통계청이 지적하는 나라, 그게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바로 이런 형편에 정부가 민간기관의 통계를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통계(statistics)와 국가(state)는 어원이 같을 정도로 서로 긴밀한 것이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근대 관료국가의 특징을 '지식의 지배'라고 표현했는데,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공공지식은 주로 통계적 형태로 발전했다. 물론 통계적 지식이 늘 필요하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통계는 '선의의 거짓말'과 '악의의 거짓말' 다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세 번째 종류의 거짓말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통계는 선진국의 보편적 징표다. 부실통계나 통계왜곡이야말로 '공공의 적'인 것이다.

대체로 우리나라는 통계 선진국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다. 또한 민간분야에서도 경제단체나 기업연구소를 중심으로 통계자료의 생산 및 보급이 꽤 활발한 편이었다. 통계는 더 이상 국가의 전유물이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정부와 민간이 통계사업에서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하등 나무랄 사안이 아니다. 통계의 정부독점이나 통제는 사회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체제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선진국형 통계문화에서 후퇴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번 통계법 개정안 제출과 관련해 정부는 그 목적이 민간통계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품질 체크'라 했다. 하지만 정부 통계 자체의 품질에 망신살이 뻗친 마당에 누가 이를 쉽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행여 통계가 말도 많고 탈도 많으니까 차제에 정부의 법적 관리하에 두겠다는 생각이 아닐까 염려스러운 것은 따라서 당연지사다.

이러한 의구심이 결코 생뚱맞지 않은 이유는 낯익은 선례(先例) 하나 때문이다. 일부 신문의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논조에 대처하기 위해 이 정부가 고안한 방법은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을 통해 국민의 여론형성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 신문법과 통계법 개정안의 공통점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부가 공권력 남용을 불사하면서까지 민간통제와 시장규제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곧 권위주의 시대의 전형적 문제해결 방식인 것이다.

민관(民官) 통계 간에 진위와 우열을 판단하는 것은 통계 이용자의 몫이다. 개별 신문에 대한 평가와 선택 역시 독자의 고유권한이다. 당사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챙길 민간통계의 품질관리나 신문사의 언론자유를 굳이 돕겠다고 나서는 정부의 '과잉친절'에 대해 국민은 당연히 '노 생큐'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