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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겨레의 신명 통일로 잇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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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천년의 아침>
마침내 우리는 가슴을 열었다. 세계를 향하여, 인류를 향하여,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향하여 우리의 넉넉한 품을 하늘처럼 바다처럼 활짝 열었다.「세울 꼬레아!」 바덴바덴에서 그 소리가 들린지 일곱해,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름을 키우면서, 배달겨레의 혼과 살을 바치면서 불끈서는 핏줄로 이 한순간을 만들어 왔다.
이것은 창조다, 개벽이다, 인간이 신으로 가는 몸짓이다. 그렇다, 환웅천왕께서 신시를 열고 그 아들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세운지 5천년, 그 후예들이 억세게 갈고 닦은 슬기와 용맹과 넘치는 힘이 인류역사의 새책장을 펼쳐들고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와 50억의 인류를 이 나라의 서울 잠실벌안마당에 끌어들여 하늘에 빌고 땅에 절하는 평화· 화합· 전진의 제사를 올리노니 보아라/이름높은 아침의 나라, 자랑스러운 청자빛 하늘에 배달겨레가 띄워올린 크고 밝은 해가 눈부시지 않느냐.
그러나 이 승리, 이 성취, 이 기쁨, 이 영광, 이축복의 시간에 우리의 마음 한 구석이 비어 있음을 본다. 저 설자리조차 없이 가득 메운 스탠드의 빈 자리가 있음을 본다.
돌이켜 보면 어찌 우리에게 가난이 없었겠는가, 싸움이 없었겠는가, 짓밟힘과 찢겨짐이 없었겠는가, 참아온 눈물이 없었겠는가. 아니 지나간 일이 아니다, 바로 지금 지척의 거리에서 내 나라의 잔칫날에 어두운 얼굴을 하고 등을 돌리고 있는 형제가 있지 않느냐. 두동강으로 허리가 갈린 내나라의 산과 물이 있지 않느냐. 이 흥겨운 날에 안으로부터 치솟는 뜨거운 피와 치솟는 눈물이 있다한들 어찌 막을까보냐.

<신과 인간의 합창>
1백60개국의 만국기가 나부끼고 10만 지구촌가족들이 스탠드에 꽃수를 놓은 올림픽메인스타디움. 어렸을때 손바닥만한 국민학교운동장에서 벌어지던 운동회날의 그 설렘, 그 흥겨움이 자라서 이제 전인류의 운동회를 맞는 감회는 사뭇 벅차다.
오늘의 세계를 움직이는 각국의 지도자들과 인간의 벽을 뛰어넘은 올림픽의 영웅들, 그리고 새롭게 신에게 도전하는 수많은 선수들이 함께 자리하고 오늘을 기다려 이 모습을 보러온 해외동포들과 할아버지·할머니들이 하나된 마음으로 둘러앉았다.
백두산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앉은 모습이 보인다. 금강산은 색동옷 입고 한강은 남치마를 입었다.한라산,압록강,영산강,금강,낙동강,지리산,태백산도 갓쓰고 상투틀고 머리따고 댕기매고 모두 나왔다.
을지문덕,연개소문,원효,김유신,정몽주,성삼문,세종대왕,이순신,안중근,윤봉길,유관순…. 저 얼굴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다. 하늘에서 땅에서 또는 먼곳에서 다들 보고 있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5천년 뿌리뻗고 가지치고 잎피워온 이나라 문화예술이 피우는 꽃을 보러 모두들 눈을 밝힌다.
아니 전세계 50억의 눈과 귀와 가슴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이윽고 식전행사로 「해맞이」춤이 벌어진다. 그렇고 말고, 아침나라에선 해가 으뜸이다. 해가 떠오르자 선수들이 입장하고 깃발들이 들어온다. 국기가아니라 오륜기를 들고 입장하는 나라가 있다. 「차이니스 타이베이」 나라 이름도 낯이 설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라도 올림픽에 참가했다.이 나라의 북쪽은 오지를 않는데….
개회식이 시작된다. 올림픽기가 서서히 오른다. 일제히 수천의 흰 비둘기떼가 하늘로 난다. 자유와 평화, 그 상징의 새들은 마음껏 날개를 친다. 성화를 들고 한 선수가 들어온다. 이나라 사람으로 올림픽 3천년사에 처음으로 월계관을 쓴 우리의 영웅 손기정선수다. 그는 마라톤 우승으로 일찍이 신과 손을 잡았던 사람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 신과 인간이 주고받은 불, 헤라신전에서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온불, 50억의 손과 손, 가슴과 가슴에 이어 당겨진 불, 배달겨레의 혼과 기름으로 드높이 쳐든 횃불, 성화가 메인스타디움에 들어선다.
그날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이국기를 달고 베를린 스타디움에 들어서던 손기정선수는 지금 내나라의 서울올림픽 성화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터지는 갈채, 쏟아지는 함성… 아무리 손뼉을 쳐도 이 시원함을 다 풀 길이 없다. 손선수의 횃불이 성화대 앞에서 최종주자인 아시안게임의 소녀 3관왕 임춘애선수에게 전해진다. 성화가 마당을 한바퀴 돈다.
성화탑에 불꽃이 오른다. 어흥 어흥 소리를 내며 불꽃은 하늘을 물들인다. 저 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인류의 가슴에 사랑으로 타오르리라.

<눈물로 보는「통일굿」>
갑자기 하늘에 천마가 나타나서 5색 꽃구름으로 하늘에 비단을 펼치며 지나간다. 하늘의 화폭에 다섯바퀴 올림픽마크가 새겨진다. 선수선서·심판선서가 끝나고 <동해물과 백두산이…>애국가가 울려퍼진다. 처음듣는 애국가는 아니지만 애국가는 새로운 음성으로 우리의 성대를 젖게 한다. 선수단이 퇴장하고 뒷풀이가 시작된다.
선녀들의 하강인가. 저 한국여인네들의 치마저고리의 물결, 차일춤은 마치 바다가 한 마당으로 기어들어온 듯 높은 파도소리를 낸다. 와아 와아-.또다시 박수가 일고 함성이 쏟아진다.
어느 틈엔가 하늘의 신들이 천마들에게 축복의 사신들을 실어 보냈다. 무지개빛 패러슈트가 새떼처럼 하늘에 치솟더니 떨어지는 꽃잎이듯 나선형으로 내려온다. 「이카로스」의 꿈을 실현시킨 인간새들이 선녀들의 치마폭에 떨어진다.
「화관무」가 벌어지니 나는 신랑, 너는 각시, 족두리 쓰고 원삼입고 신사임당,춘향이,심청이,흥부,놀부,이몽룡,변학도 신바람이 나는구나. 「혼돈」으로 이어진다. 어디서 온 도깨비들이냐. 아프리카,아라비아,뿔달린놈,수염긴놈,하회탈,봉산탈,먹중,뺑덕어멈,온갖 잡귀 다 나온다. 좇아내라 훨훨훨,분단귀신,가난귀신,질병귀신, 모두다 다 좇아내라. 손에손잡고 벽을 넘어서고 또다시 「정적」. 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성화대쪽으로 달린다.
「새싹」들이 일제히 팔랑개비, 바구니를 들고 굴렁쇠를 굴리고 파릇파릇 솟는다. 줄넘기를 하고 「화합」으로 이어진다. 농자천하지대본- 벌써 어깨춤이 일어난다. 쿵더더쿵,쿵더더쿵, 농악이 어우러지고 「고싸움」이 와아 와아- 절경을 이룬다. 오오 저것이 배달겨레의 한풀이렷다, 신명이렷다.
「한마당」이 벌어지고 우주인과 지구촌 가족들이 호돌이의 생일날 축하의 대단원을 이룬다. 「아침의 나라에서」.
인류가 그러온 꿈의 한마당 배달겨레의 얼과 슬기의 사상최대의 무대는 막이 내린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다시 열리는 하늘, 뜨는 해, 솟는 불을 본다. 저 환호의 소리속에 다시 무거운 가슴을 일으키며 이 인류화합의 굿판이 「통일긋」이었음을 깨닫는다. 아암 그렇고 말고 통일이야 오고야 말테지. 우리 또다시 기쁨에 큰청컹으로 울음 터뜨릴날 있을테지. 이나라에 오늘 띄운 해는 영원히 꺼지지 않으리라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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