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북미협상 '타임라인(시간표)' 둘러싼 수수께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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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북미협상의 핵심 인사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노(No) 타임라인(시간표)' 발언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25일 취임 두달을 맞아 CNN과 한 인터뷰에서 "난 2개월이 됐든 6개월이 됐든 (비핵화)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두 정상 간 합의를 달성하기 위해 신속하게 전진하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두 나라(북미) 사이에 40년 간 긴장관계가 이어진 이후 바로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이르다(it was too soon to expect)"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비핵화) 시간표 설정하지 않을 것" 선언 #미국, CVID 이어 '비핵화 시한' 원칙까지 접은 셈 #북한 비핵화 선조치 유도 위해 당분간 '로키'로 갈 듯 #"결국 미국의 비핵화 원칙은 뭐냐"는 비판 제기될 수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협상 양대 원칙 중 하나인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난 데 이어, 나머지 한 축이었던 '비핵화 기한 설정'마저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발언이다. 가뜩이나 싱가포르 회담 결과에 비판적인 워싱턴 조야에서 "그렇다면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원칙은 뭐냐"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폼페이오 발언은 전날 미 국방부의 익명의 고위 관계자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로이터통신 등을 통해 "곧 북한에 특별한 요구사항을 담은 구체적인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할 것이다. 시간표는 북한의 이행 수준을 확인하는 데 충분할 것이며 북한이 선의로 움직이는지 여부를 매우 빠르게 알 게 될 것"이라고 밝힌 걸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가시적인 비핵화 스케줄을 내놔야 한다는 미국 조야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 국방부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산책 중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6월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산책 중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 뿐 아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6.12 싱가포르 회담이 끝난 직후인 지난 13일 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인 2020년 말까지, 2년 6개월 내에 주요 비핵화가 달성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2주 만에 자신의 발언을 접은 것이기도 하다. 대신 그는 "협상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진전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재평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폼페이오의 발언이 계산된 것임은 인터뷰 후 미 정부의 공식 반응에서 드러났다.
전날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할 것"이라고 했던 미 국방부는 폼페이오 인터뷰 발언 이후 바로 대변인이 나서 발언을 진화하고 나섰다. 데이나 화이트 국방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국방부는 현재 진행 중인 북한과의 외교적 절차를 지원하는 데 전념할 것이며, 이 절차에는 구체적인 시간표가 없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가 '시간표'라는 협상 조건을 거두고 나선 건 크게 두가지를 시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네바다 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지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네바다 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지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당분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로키(low-key·절제된 저강도 대응)'로 임할 것임을 확실히 한 것이다. 1차적으론 현재 미군 유해 송환을 목전에 두고 있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다. 또 싱가포르 회담에서 사실상 '단계적 비핵화'를 수용한 미국 입장에선 어떻게든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시작하도록 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더군다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돌아오자마자 얼마 안 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찾는 등 비핵화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폼페이오는 정상회담 직후 "다음 주 언젠가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3차 방북이 임박했음을 예고했지만, 2주가 넘도록 아직까지 북한 측 협상 상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마디로 폼페이오로선 다급한 입장이다. CNN은 "폼페이오 장관이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의 데드라인 설정을 거부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오른쪽)[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오른쪽)[AP=연합뉴스]

또 하나 대두하는 게 매티스 국방장관의 영향력 저하다.

NBC방송은 이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매티스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정책 결정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매티스 패싱(passing·건너뛰기)'이다. 자신들이 제기한 '비핵화 시간표' 주장을 하루도 못 가 접어야 할 정도로 북한 문제에 있어 폼페이오 장관에 밀리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방송은 "지난해 12월 주 이스라엘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문제에 매티스가 강력 반대한 이후 트럼프와의 사이가 벌어졌다"며 "임기 초 하루에도 수 차례나 전화통화를 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이제는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NBC방송은 2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매티스 국방장관 간 관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NBC방송은 2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매티스 국방장관 간 관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싱가포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중단 방침을 밝히는 과정에서도 매티스 장관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매티스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에야 당시 싱가포르 현지에 있던 랜덜 슈라이버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로부터 관련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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