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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침 늦춘 6시간…UN군 첫 전투, 오산 죽미령 지금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50년 7월 5일 북한군은 옛 소련에서 생산한 T-34전차를 앞세워 남진을 계속했다. 이날 오전 8시16분 유엔군과 첫 교전을 벌이게 된다. 사진은 6.25전쟁때 촬영한 T-34전차. [사진 국가보훈처 블로그·LIFE]

1950년 7월 5일 북한군은 옛 소련에서 생산한 T-34전차를 앞세워 남진을 계속했다. 이날 오전 8시16분 유엔군과 첫 교전을 벌이게 된다. 사진은 6.25전쟁때 촬영한 T-34전차. [사진 국가보훈처 블로그·LIFE]

북한군 T-34전차의 소름 돋는 궤도 소리

20일 오후 3시 경기도 오산시 외삼미동 죽미고개. 왕복 6차선의 국도 1호선이 시원스레 뻗었다. 도로 오른편(북쪽 수원 방향)에 반월봉(半月峰·해발 117m)이 야트막히 자리하고 있다. 오산시에는 반월봉 외에도 양산봉·노적봉 등 해발 200m가 채 안 되는 구릉성 산지가 오목하게 솟아 있다. 복잡한 도심의 외곽인 죽미고개는 녹음까지 어우러져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68년 전 그날의 ‘죽미령 고개’(당시 부르던 명칭)는 달랐다. 대나무가 아름다워 이름이 붙여졌다는 고개 위로 붉은 피가 쏟아졌다. 유엔군 초전기념관·오산향토문화연구소 측의 도움으로 과거 전투 상황을 일부 재구성해봤다.

1950년 7월2일 대전역에 도착한 유엔군 지상군인 미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원 모습. [사진 유엔군 초전기념관]

1950년 7월2일 대전역에 도착한 유엔군 지상군인 미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원 모습. [사진 유엔군 초전기념관]

‘쿠쿠쿠쿠루~‘ 6.25전쟁이 발발한지 10일째인 1950년 7월 5일 오전 7시. 이틀 전 한강을 건너는 데 성공한 북한군 105 전차사단 예하 연대가 수원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옛 소련제 T-34 전차 33대에서 울리는 궤도 소리가 요란했다. 후방에는 북한군 4사단 소속 보병 5000여 명이 따랐다. 같은 날 오전 8시 16분. ‘슈웅~쾅!’ 죽미령 고개 주변 반월봉과 인근 92·99고지에 미리 진지를 구축한 미(美)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의 105㎜ 야포가 불을 내뿜었다. 일사천리로 남침하던 북한군에게 첫 공격이 가해진 것이다. 스미스 부대는 한국전에 유엔(UN)군으로 참전했다. 이 전투가 유엔군 창설 후 첫번째로 벌어진 전투인 셈이다.

죽미령 교전 당시 스미스 부대원들의 배치도. [사진 유엔군 초전기념관]

죽미령 교전 당시 스미스 부대원들의 배치도. [사진 유엔군 초전기념관]

낙동강 최후 방어선 구축 시간 벌어줘

스미스 부대는 미 8군 산하 연대 보병과 포병대대 병력 등 모두 540명으로 구성됐다. 부대 이름은 당시 보병 대대장이었던 찰스 스미스(Charles B. Smith)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특수임무 부대라지만 병력이나 장비 면에서 북한군보다 너무나 열세였다. 33대 전차 중 4대를 잡았지만, 대전차 포탄은 이미 떨어진 상태였다. 후방의 보병 병력투입으로 진지는 점점 포위됐고, 급기야 전멸할 상황까지 놓이게 됐다. 결국 이날 교전 시작 6시간 15분 만인 오후 2시30분쯤 퇴각명령이 떨어졌다. 이날 전투로 스미스 부대원 540명 중 56명 전사했다. 포로로 붙잡힌 89명 중 39명도 사망했다. 북한군은 5000여명 중 42명이 숨지고, 85명이 다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첫 번째 유엔군의 전투는 그렇게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스미스 부대원들이 무반동총으로 북한군의 전차를 조준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스미스 부대원들이 무반동총으로 북한군의 전차를 조준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하지만 죽미령 전투는 승패를 떠나 우리 군이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줬다. 전세를 뒤집는 초석이 됐던 것이다. 심수연 유엔군 초전기념관 사무국장은 “당시 유엔군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던 북한군으로서는 재정비를 하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북한군의 남쪽으로의 진격을 10여일간 늦춰 (우리 군으로서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엔군 참전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북한군은 죽미령 전투 3일 뒤 소련에 군사지원을 요청한다.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재정비를 마친 국군과 유엔군은 이후 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하게 된다.

유엔 참전기념관내 죽미령 전투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코너. 모형 위에 영상을 비춰져 이해가 쉽다. 김민욱 기자

유엔 참전기념관내 죽미령 전투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코너. 모형 위에 영상을 비춰져 이해가 쉽다. 김민욱 기자

자랑스러운 역사와 평화의미 담은 죽미령

현재 죽미고개에는 유엔군 초전기념관이 운영 중이다. 낯선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스미스 부대원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반월봉 일원 1만4000여㎡ 부지 위에 지난 2013년 2월 지상 3층 규모로 준공했다. 야외전시장에는 미군의 패튼전차, 90㎜ 고사포, 14.5㎜ 중고사 기관총 등 안보시설물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82년 세운 초전기념비를 볼 수 있다. 북한군에 맞선 유엔군의 최초 방어선을 높이 19.5m 세 개의 탑신으로 형상화했다. 스미스 부대원들의 전투장면도 청동 동상으로 제작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참전과정이 상세히 전시돼 있다. 처절했던 죽미령 전투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게 영상과 모형으로 꾸며놨다. 스미스 부대원의 인터뷰 영상도 있다. 초전기념관에는 한 해 평균 3만5000여 명이 찾는다.

유엔군 초전 기념비. 높이 20m에 달하는 세개의 탑은 당시 진지 방어선을 상징한다고 한다. 김민욱 기자

유엔군 초전 기념비. 높이 20m에 달하는 세개의 탑은 당시 진지 방어선을 상징한다고 한다. 김민욱 기자

죽미령 고개에 준공된 유엔군 초전 기념관 모습. 김민욱 기자

죽미령 고개에 준공된 유엔군 초전 기념관 모습. 김민욱 기자

오산시는 유엔군 초전기념관 주변 3만1000여㎡에 내년까지 유엔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평화공원에는 안보교육·체험형 추모관과 스미스 부대 기억의 숲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빌 위릭 스미스 부대 C중대 2소대장은 지난 1998년 열린 참전 기념식에서 한국의 발전과정에 감탄하며 전우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한다.

오산=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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