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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전어 대접했지만…文 부탁한 1년 지나자 勞·政 곳곳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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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4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노동계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4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노동계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4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하는 자리에 청와대는 전어를 내놨다.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를 메뉴로 골라 노사정위 활동을 중단했던 양대 노총을 극진히 대접한 것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지난 1월 31일 민노총은 8년 2개월 만에 노사정 회의에 복귀했다.

청와대가 지난해 10월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와의 만찬 간담회에 내놓은 식단. 청와대는 노·사·정 대화 복원을 위해 가을전어를 비롯해 콩나물밥과 추어탕을 대접했다.[뉴스1]

청와대가 지난해 10월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와의 만찬 간담회에 내놓은 식단. 청와대는 노·사·정 대화 복원을 위해 가을전어를 비롯해 콩나물밥과 추어탕을 대접했다.[뉴스1]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6월 21일에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양대 노총을 향해 “노동과 직접 관련 있는 정부위원회는 물론이고 노동과 직접 관련 없어도 간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또는 각계의 다양한 의견이 필요한 정부위원회의 경우에 양대 노총 대표를 위원으로 모시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계는 지난 두 정부에서 워낙 억눌려 왔기 때문에 아마도 새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내용들이 아주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며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1년 정도는 좀 시간을 주면서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 작년 6월 21일 “1년 정도는 좀 시간 주라”

문 대통령의 발언 뒤 정확히 1년이 흐른 지금 노동계는 더 이상 정부를 기다려주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20일 오후 성명을 내고 정부를 향해 “오늘(20일) 당·정·청 회의는 6월 30일 전국 노동자 대회에 모이는 10만여 노동자들에게 기름을 부었다”며 “문재인 정부 당·정·청이 노동 존중, 소득 주도 성장을 내다버린 궤도이탈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맞닥뜨려야 할 상황은 상상이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날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다음달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위반 사업주를 곧바로 처벌하는 대신 6개월 간의 계도 기간을 두기로 한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한 것이다.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왼쪽), 백석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지난 19일 개정 최저임금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스1]

문현군 한국노총 부위원장(왼쪽), 백석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지난 19일 개정 최저임금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스1]

민주노총 산하인 전교조도 이날 오후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다. 이날 오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교조 해고자 문제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직권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히자 강력 반발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013년 10월 전교조에 “노조가 아니다(법외노조)”라고 통보를 했고, 이 때문에 전교조 업무를 전담하는 소속 교사들은 일선 학교로 복귀해야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뉴스1]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뉴스1]

이뿐만 아니다. 노동계는 곳곳에서 정부와 충돌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저임금 문제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민주노총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꾸준히 집회를 하는가 하면 6·13 지방선거 때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를 따라다니며 항의 시위를 했다.

이 여파로 지난 19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는 노동계 측 위원이 모두 빠진 채 진행되는 파행을 빚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이 회의는 당초 지난 14일 예정됐다가 노동계의 참석을 설득하기 위해 이날로 미뤄졌었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새로운 상생 모델에도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지난 19일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는 1만2000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자동차 공장 투자 협약식을 열기로 했었지만 바로 전날 취소됐다. 문 대통령까지 참석이 예정됐던 자리였지만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사는 무산됐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문대림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둘러싸인 모습. [뉴스1]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문대림 민주당 제주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둘러싸인 모습. [뉴스1]

하지만 민주노총의 반대가 가장 큰 배경이란 해석이 나온다. 광주시는 근로자의 임금을 낮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기업은 일자리를 늘리고 지방자치단체는 근로자의 주거 문제 등을 해결해 주는 ‘광주형 일자리’의 하나로 자동차 공장을 추진했지만 현대차 노조는 “경영진이 ‘광주형 일자리’에 투자하면 실력행사에 나서겠다”며 투쟁을 예고했다. 현대차 노조는 전국금속노조에 속해 있고, 금속노조는 민주노총 산하다.

정부와 여당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의 사회적 대타협을 기반으로 하는 노사 상생의 일자리 창출 모델”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전국적 확대와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민주당은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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