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정인 말고 문재인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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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경은 복합적이다. ‘핵 없는 북한’과 한반도 평화 가능성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론 ‘안보 쇼크’로 인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초대형 사안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안보 쇼크’에 대통령이 불안 해소해야 #민심·야당과 불통한 정책은 결국 실패

우선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도발적”이라며 중단 방침을 분명히 했고 이에 우리 정부도 맞장구쳐 훈련 중단은 사실상 확정됐다. 그러나 연합훈련 중단은 우리 안보에 가할 공백이 워낙 크고 장기적으로 한·미 동맹을 해체시킬 우려마저 있다. 중단 규모를 최소화하고 훈련 공백을 메울 대안도 내놔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14일 열린 제8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불거진 북한의 장사정포 후방 이동 추진설도 마찬가지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한·미가 전방에 배치한 자주포와 미사일을 철수하고 전투기 전방 비행을 중단하면 상응 조치로 장사정포를 30~40㎞ 후퇴시키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북한이 평화 분위기에 편승해 서울 방위에 필수적인 한·미의 전략자산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 군은 “사실이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민의 마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북·미 관계도 국민들이 어리둥절할 만큼 급진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7일(미국시간) 직통전화로 대화할 예정이다. 핵 단추 크기로 원수처럼 싸웠던 두 사람이 핫라인으로 ‘직거래’를 할 수 있는 관계로 돌변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직통전화를 통해 북·미 간에 주한미군 감축 등 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는 논의가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진행된다면 국민의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방부 장관이나 외교부 장관이 국민 앞에 나서서 궁금증을 풀어 주고 안심시켜 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도 정책에 관여할 수 없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만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연합훈련 중단 같은 중대 뉴스를 ‘예언’식으로 흘려 왔을  뿐이다. 정부는 그때마다 “사견일 뿐”이라며 일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의 말은 현실이 되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담당 장관들은 안 보이고 문 특보가 전천후 해설사로 뛰는 분위기다.

온 국민의 생명이 달린 안보 문제를 혹여 이런 식의 불투명한 ‘특보 플레이’로 넘어가려 한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가 여론의 반발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절실하다. 직접 국민 앞에 나서 한반도 정세 변화를 투명하게 설명하면서 안보는 철통같이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할 필요가 있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북한과 협상 내용을 비밀에 부쳤다가 결국 거센 반발을 자초해 정책 동력을 상실했다.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문 대통령이 국민·야당에 투명하게 이해를 구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