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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대전은 보수교육감…현직 중 10명 당선 확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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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14일 0시 현재 전국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 후보들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경북·대구·대전 3곳은 보수 성향 후보 당선이 유력 혹은 확실시되고 있다.

제주에선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가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보수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교육감 선거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당선자는 2010년 6명, 2014년 13명이었다.

이번 선거에선 현직 교육감 12명이 출마했고 이들 중 10명의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다. 진보 교육감으로는 조희연(서울)·이재정(경기), 김석준(부산), 김지철(충남), 김병우(충북), 최교진(세종), 박종훈(경남) 후보, 3선 도전에 나선 민병희(강원)·김승환(전북) 후보 등 9명이다. 현직 교육감으로 재출마한 보수 성향의 설동호(대전) 후보도 당선이 확실시 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시 보수 성향으로 이번에 처음 출마한 임종식(경북) 후보도 당선이 유력 또는 확실시 되고 있다.

서울은 재선 도전에 나선 조희연 후보가 보수 성향의 박선영 후보와 중도 성향의 조영달 후보를 여유 있게 앞섰다. 조 후보는 2014년 선거 때(39.1%)보다 높은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당시 보수 진영은 고승덕(24.3%)·문용린(30.7%) 후보가 과반에 달하는 득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 난립으로 진보 측에 교육감 자리를 내줬다.

경기도는 이때와 정반대로 보수 진영이 단일화에 성공했고 진보 후보는 난립했다. 보수 진영은 임해규 후보로 단일화를 이뤘지만, 진보 측은 현 교육감인 이재정 후보, 송주명 한신대 교수, 배종수 서울교대 명예교수 등이 출마해 표가 갈렸다. 그러나 ‘현직 프리미엄’을 쥔 이재정 후보가 여유 있게 2위인 임 후보를 따돌리며 선두를 유지했다.

지난 달 공동으로 공약을 발표하는 진보 교육감 후보들. [연합뉴스]

지난 달 공동으로 공약을 발표하는 진보 교육감 후보들. [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서 눈여겨볼 만한 지역은 교육감 선거 실시 후 한 번도 진보 후보가 당선된 적 없는 울산이다. 울산은 전통적인 '보수 텃밭'이었다. 김복만 전 교육감이 지난해 공직선거법 위반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무주공산이 됐다. 그 자리를 전교조 울산지부장 출신인 노옥희 후보가 치고 올라오면서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다.

대구에선 3선 도전을 포기한 우동기 전 교육감 대신 여성가족부 장관 출신인 강은희 후보가 나서 진보 후보인 김사열 경북대 교수와 접전을 벌였다. 대전에선 현직의 중도·보수 교육감 중 유일하게 설동호 후보가 출마해 전교조 대전지부장을 지낸 성광진 후보와 경합을 벌였다.

이처럼 보수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번 선거의 정치 지형 자체가 ‘몰락’ 위기에 놓인 보수에 불리했기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는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때문에 정당과 무관하다. 그러나 실제론 여야 정치권과 깊이 연관돼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 성향의 박선영 서울교육감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가 선관위의 경고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의 급진전도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 때문에 지방선거 자체가 이슈에서 뒷전으로 밀려났고, 교육감 선거는 더욱더 국민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상대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현직’ 교육감들이 유리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사회학과 교수는 “새로운 인물보다는 ‘현직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현직에 있는 다수의 진보 교육감들이 우세였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 재출마한 현직 교육감은 진보 11명, 보수 1명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 향후 교육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권과 교육감이 모두 진보인 데다, 지방교육자치까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쪽에 치우친 교육정책이 펼쳐지진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후보들이 강조한 외고·자사고 폐지, 혁신학교 확대 등은 현 정부의 입장과 대부분 같거나 비슷하다. 진보 단일 후보 15명은 선거 과정에서 교장공모제 확대, 공영형 사립유치원 육성, 교원의 노동·정치기본권 보장, 학생·청소년 인권법·인권조례 제정 등을 공동으로 약속했다.

 올 8월 대입 개편안 발표에서도 진보 교육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학생부 전형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기간 동안 진보 후보들이 강조한 외고·자사고 폐지, 혁신학교 확대 등 정책은 현 정부의 입장과 대부분 같거나 비슷하다. 진보 단일 후보 15명은 선거 과정에서 교장공모제 확대, 공영형 사립유치원 육성, 교원의 노동·정치기본권 보장, 학생·청소년 인권법·인권조례 제정 등을 공동으로 약속했다.

당장 올 8월 결정을 앞둔 대입 개편안 발표에서도 진보 교육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학교 현장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는 진보 교육감들의 의견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들은 대부분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학생부 전형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향후 교육 이슈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부를 끌고 가는 상황도 많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6월 진보 교육감들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를 건의하고 교육부가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외고·자사고와 일반고의 동시모집 결정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배상훈 교수는 “교육부가 교육감에 끌려다니는 '교육감 독주'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며 “현재의 교육부는 더 이상 교육감을 견제할 힘이 없다”고 말했다.

진보 교육감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엔 혁신학교, 무상급식 등 문제를 놓고 교육부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혼란과 갈등은 컸지만, 교육부와 교육감이 서로를 견제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권과 교육감의 철학과 비전이 맞지 않아 불협화음은 있었지만 한쪽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석만·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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