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에게 메달부담 주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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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반세기라는 오랜 기간 체육계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서울올림픽을 맞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서울올림픽은 12년만에 동서가 모두 참가하는「화합의 제전으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돌이켜보면 한국이 이같이 큰 의의를 지닌 올림픽을 개최하게된 것이 꿈만 같다.
지금으로부터 43년 전만 해도 한국의 체육인들은 올림픽에 우리의 태극기만이라도 걸고 출전하는 것이 최대의 소망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사람은 일제하인 1932년 LA대회에 일본 대표로 나선 권태하 김은배(이상 마라톤) 황을수(복싱) 선수와 임원 이상백씨(총무) 등 4명.
이중 황을수씨는 6·25때 납북돼 생사를 알 수 없고 나머지 세분은 이미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그 분들이 서울올림픽 개최를 안다면 감격은 어떠할 것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손기정(마라톤) 이성구 염은현(이상 농구) 씨 등 세분이 살아서 서울올림픽을 맞게됐으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지금도 나는 48년 8월 11일 영국 런던의 엠파이어 메인 스타디움에 울려 퍼진 애국가를 잊지 못한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첫 출전한 제14회 런던올림픽 역도경기에서 동메달을 따낸 나는 시상대에 올라선 순간『이것이 조국이구나』하는 벅찬 감격으로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지난 81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이래 개막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까지 갖가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민주화에 따른 정치적 변혁, 북한의 참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올림픽 개최 이후의 우려 등 그 어느 나라가 그 어느 대회를 개최할 때보다 많은 진통과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은 그만큼 더욱 값지고 보람찬 열매를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
북한의 불참이 아쉬움으로 남아있지만 현시점에서 국민의 70%이상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어려움을 딛고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현대올림픽은 그 나라의 역량을 선보이는 국력 과시의 무대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52년 헬싱키대회에 소련 등 동구권 국가들이 처음 참가하면서 올림픽은 국가간의 치열한 메달경쟁으로「스포츠의 전쟁」으로까지 표현되고 있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쿠베르탱」이 강조한「참가의 의의」는 단지 선언적 표어가 되고 말았다.
동구권의「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은 국가간의 메달경쟁을 목표로 하는 국가동원 스포츠체제로 그 동안 막강한 위력을 과시해왔다. 한국이 태릉훈련원을 통해 국가대표선수를 집단적으로 양성해온 것도 이 같은 세계 스포츠 추세에 발맞추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서수단 임원의 한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해 국민들의 과도한 메달기대에 부담도 적지 않다.
서울올림픽은 어쩌면 우리가 개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체육 역량이 과대선전, 인식되기 쉽고 메달성적은 올림픽개최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발상도 나옴직하다.
특히 전 대회인 84년 LA올림픽에서 대거 금메달 6개를 획득하고 세계 10위 권에 부상하는가하면, 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93개로 중국에 이어 아시아권 2위를 마크함으로써 서울올림픽의 부담은 그만큼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과거대회에서 이같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대회에서는 적어도 그에 못지 않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은 물론 필요하나 좀더 냉정한 예측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서울올림픽은 LA때와는 달리 소련·동독 등 동구권강호가 대거 출전할 뿐 아니라 70년대 올림픽에서 퇴보를 보였던 미국·서독 등 서방진영의 반격도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한국이 올림픽에서의 성적을 크게 우려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선수단은 86년 11월 이후 서울올림픽에 대비한 집중적인 맹훈련을 지금까지 열 차질 없이 계속해왔으며 현재 LA올림픽 때 못지 않은 성적을 목표로 삼고있다.
특히 우리 선수단은 어떠한 강적을 맞더라도 자신의 베스트를 다하면 최선의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있다.
나 자신은 선수들이 과도한 중압감을 갖지 말고 지금까지 쌓아온 실력 그대로 실전에 나가도록 심적 부담을 줄이는데 주력하고있다.
흔히 일반인들은 홈 그라운드에서 싸우는 것이 여러 가지 유리한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지난번 서울아시안게임 때처럼 관중의 동원이 큰 힘이 될 수도 있고 심판상의 불리를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민의 지나친 기대를 의식해 긴장하기 쉽고 정신적·심리적 중압감 때문에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언론의 보도에도 큰 영향을 받게된다.
금메달 후보로 지목해 너무 떠들어대고 대서 특필하다 보면 선수들의 정신집중을 흐트러뜨리거나 불안감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우리 선수들이 안정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올림픽에서도 국가간의 치열한 메달경쟁은 당연히 예상된다. 오히려 역대 어느 대회보다 그 강도는 높을 것이다.
그러나 개최 국의 국민으로서 올림픽의 참 정신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는 결과에 관계없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싶다. 김성집<한국선수단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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