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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메리카의 파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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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최근 미·중 분쟁은 무역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대중국 전략을 전환했다.” 리뤄구(李若谷) 전 중국수출입은행장의 결론이다. 중국 국유 금융기업인 중신(中信)그룹 소속 싱크탱크가 지난달 주최한 미·중 관계 세미나에서다. 다음은 그가 제시한 근거다.

중국을 보는 미국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지중(知中)파와 친중파, 공화당과 민주당,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구분이 사라졌다. 모두 강경하다.

중국이 세계 일류 군대를 만든다는 목표는 방어 수요에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처럼 글로벌 군대를 키우겠다는 정치적 목적이다.

무역 문제는 고의로 해결하지 않고 있다. 말로만 약속할 뿐이다.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로 정부가 주도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경쟁할 수 없다. 중국 정부의 시장 개입은 불공평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원칙에도 어긋난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이해하는 수준이 40년래 최저치다. 미국은 민주사회인 대만을 지지하려 한다. 전체 중국을 대표하지 않으려는 대만은 이미 중국이 아니다. 중국 군사력이 서태평양에서 지나치게 강해졌다. 대만을 도와 중국과 군사력 균형을 이뤄야 한다. 단 공평한 경쟁을 위해 중국 체제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리뤄구 전 행장은 “이번 미·중 분쟁은 중국의 발전 방향을 둘러싼 다툼”이라고 결론 내렸다.

토론이 이어졌다. 중국이 미국 기대에 맞춰 시장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WTO를 무력화시킨 뒤 중국을 배제한 무역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해마다 반도체 260억 달러, 석유 200억 달러어치를 수입하는 중국을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서 퇴출하겠다는 거다. 준비도 마쳤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이 시장경제가 아닌 근거를 400여 쪽, 미국은 900여 쪽의 문건으로 마련했다.

2007년 미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중국(China)과 미국(America)을 합쳐 ‘차이메리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각각 생산과 소비로 역할을 나눠 협력하고 의존한다는 의미였다. 10여 년 만에 중국 수뇌부는 미국의 근본적 변화를 알아챘다. 차이메리카는 파산했다. 미국의 공세는 거침없다. 남중국해는 화약 내가 가득하다. 지난달 27일 미 해군은 열한 번째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쳤다. 처음으로 전함 두 척을 투입했다. 지그재그식 해상시위를 펼쳤다. 단순 기동을 넘어섰다. “중국 함정의 경고로 쫓아냈다”는 중국 측 발언이 사라진 이유다.

오늘 열리는 대만 타이베이(臺北) 미국재대만협회(AIT) 신청사 준공식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참석한다. 북·미 정상회담에 가리면서 중국은 시간을 벌었다. 미·중 불화의 시대다. 대비할 시간은 한국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