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김정은 위원장이 도쿄에 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7월 24일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북·일 국교정상화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어 선수촌을 방문해 남북 단일팀 선수들을 격려한 뒤 조선문화예술회관에서 조선총련 주민들이 마련한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온다는 가정하에 써본 기사다. 허무맹랑한 소설 같아 보이지만 최근 김 위원장의 활발한 외교 행보를 떠올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실제 김 위원장이 도쿄 방문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 같은 한반도 화해 무드가 계속된다면 도쿄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을 이룰 확률은 상당히 높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보다 선수단의 규모도 커진다. 문재인 대통령 옆에 나란히 서서 남북 단일팀 선수단에게 손을 흔드는 그림을 김 위원장은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판문점·싱가포르에서 연출한 ‘정상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발신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가능한 얘기”라는 준비된 반응이었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한 정부 관계자는 “베이징·싱가포르도 갔는데 도쿄라고 못 올 이유가 없다. 김 위원장의 일본 방문으로 북·일 관계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일 정상회담을 꼭 평양에서 하라는 법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스포츠 행사를 계기로 일본을 찾는 것이라면 부담이 적다. 얼마 전까지 머리 위로 미사일을 쏘았던 나라의 지도자를 냉큼 불러들이기엔 여론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북·일이 수교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각의(閣議)를 거치면 김 위원장의 입국은 가능하다. 북한 스포츠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참가한 전례를 적용하면 문제가 없다.

아베 총리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꿨다. “김 위원장에게는 지도력이 있다. 새출발을 하자”(18일 국회결산위원회)면서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을 띄우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을 국민들도 다 알고 있다.

아베 총리와 김 위원장 앞에는 ‘납치 문제’라는 큰 강이 놓여 있다. 북·일 정상회담이 실현되려면 어디쯤엔가 다리를 놓아야 한다. 서로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는 절충점을 찾기 위한 작업은 갈 길이 멀다. 성공한다면 2020년 김 위원장은 29년 만에 도쿄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991년 브라질 위조여권으로 입국했을 당시 그는 만 일곱 살이었다. 지도자가 된 ‘36세 김정은’이 도쿄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 궁금하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