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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사회적 책임 다해야 기업 생존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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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처럼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시장은 기업들에 다양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이다. 경영진의 전횡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제와 감사위원회가 도입됐고, 여러 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거나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재무 정보의 투명성 강화다. 미국에서는 사베인스-옥슬리(Sarbanes-Oxley)법안이 제정됐고, 국내에서도 최고경영자 공시 서류 인증제도가 실시돼 기업들은 내부통제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 경영을 들 수 있다. 지배구조의 개선이나 재무 정보의 투명성 강화가 주로 주주와 경영자 간의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지속 가능 경영은 기업 경영에 대한 근본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점에서 구별된다. 지속 가능 경영은 기업이 경제적 성과에만 매달려서는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반성으로 시작됐다. 즉 주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반영하고, 환경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만이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하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속 가능 경영은 높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1993~2006년 실증분석을 보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으로 구성된 다우존스 지속 가능성 지수의 수익률은 모건스탠리 지수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기업들도 지속 가능 경영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다. KPMG의 조사에 따르면 포춘 선정 상위 250개 기업 가운데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의 비중이 2002년 14%에서 2005년 68%로 증가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지속 가능 경영 수준은 선진 기업들에 비해 여전히 낮게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추상적인 담론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좋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 기업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첫 번째 오해는 지속 가능 경영을 자선 사업이나 사회 봉사와 혼동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속 가능 경영이란 높은 성과를 올리는 기업들에나 해당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경영자들에게 지속 가능 경영은 한가한 놀음으로 비춰지거나 사회의 눈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준조세 정도로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속 가능 경영이 주로 환경이나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책임만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얼핏 보기에 지속 가능 경영은 환경 보호나 사회 공헌만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무엇보다 경제적 책임이다. 환경적 책임이나 사회적 책임도 경제적 책임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 책임은 지속 가능 경영의 첫걸음이 된다. 반면 경제적 성과만을 추구하기 위해 환경적 책임이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경우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은 위협받게 된다.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오해는 지속 가능 경영의 도입 시기를 기업의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지속 가능 경영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이제 가시화 단계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 경영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환경.노동.인권.지역사회 기부 등 재무제표상에서는 파악할 수 없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 활동을 지수화해 국제적인 표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ISO는 2007년까지 표준화 작업을 마무리하고 국제기구와 금융기관 및 기업들이 참고할 수 있는 CSR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 표준이 완성되면 각종 입찰이나 주식 상장 때 이 표준을 준수하게 하는 등 국제적인 강제 규정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따라서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은 국제 거래나 투자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은 기업 생존의 필수 요건이 될 것이다.

실제로 소니.JVC.샤프 등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주요 납품업체들에 환경 규제를 공표하고 구매 과정에서 해당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지난해부터 국내외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전 제품에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은 부품만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필립스는 협력업체에 노조가입권 보장, 아동 노동력 착취 금지 등 노동 조건을 비롯해 인종과 성.종교에 따른 차별을 전면 금지하고, 환경과 안전 분야에서 지속 가능성 원칙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세 번째 오해는 지속 가능 경영이 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생각이다. 지속 가능 경영으로 인해 이미 추진 중인 전략이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속 가능 경영에서 앞서 있는 기업들은 지속 가능 경영을 기존의 사업 전략과 통합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발굴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 지속 가능 경영에 바탕한 사업전략의 발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기업으로는 GE를 들 수 있다. 지속 가능 경영에 바탕한 GE의 새로운 사업 전략인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은 고객이 직면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택한 GE의 친환경 전략을 의미한다. GE는 환경 관련 사업의 매출액을 2004년 100억 달러에서 2010년까지 두 배인 200억 달러로 늘릴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이를 위해 환경 관련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R&D)투자를 연간 7억 달러에서 2010년에는 15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제 더 이상 지속 가능 경영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없다. 우리 기업들이 지속 가능 경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적극적으로 추진할 경우 성장을 위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지속 가능 경영=매출액.순이익 등 재무적 성과와는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영 개념. 기업이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종업원.협력업체.고객.지역사회 등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등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만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는 분석에서 나온 경영 이념이다.

고재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