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경제 대통령', 'Fed 의장' ? … 파월의 선택만 남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미국 FOMC는 1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올릴 것인가. 제롬 파월 Fed 의장(위쪽)의 한마디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아래 왼쪽)과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떨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 FOMC는 1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올릴 것인가. 제롬 파월 Fed 의장(위쪽)의 한마디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아래 왼쪽)과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떨고 있다. [중앙포토]

아시아 외환위기의 충격이 한국과 태국 등 아시아 국가를 휩쓸고 간 1998년. 당시 미국 경제는 저물가와 고성장을 구가하던 ‘골디락스(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시절을 누렸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내릴 이유가 없었다.

내일부터 이틀간 FOMC 개최 #실업률 하락 등 미 경제 강세 지속 #시장선 올 4차례 금리 인상 전망 #전문가 “파월, 신흥국 신경 안써 #Fed 정책 방향 바꾸지 않을 것” 예측 #긴축 발작 앓고 있는 터키·아르헨 #금리 인상 땐 ‘6월 위기설’ 우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Fed는 그해 9월부터 3개월 동안 정책금리를 3번이나 인하했다. 연 5.5%이던 미국 정책금리는 4.75%까지 내려갔다.

시장의 의구심에 맞선 그의 답변은 이랬다. “미국 경제가 전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홀로 번영의 오아시스로 남을 수는 없다.”

그린스펀은 미국의 중앙은행장보다 ‘세계의 경제 대통령’에 방점을 찍었다.

Fed 의장은 언제나 존재론적 질문에 맞서야 한다. 미국의 중앙은행장인 동시에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장이냐,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냐.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12~13일(현지시간)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다.

시장은 파월이 이번 회의에서 그린스펀과는 달리 미국의 중앙은행장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낼 것으로 본다. Fed가 이번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선물시장에서는 Fed가 기준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84%나 된다. Fed가 이번에 금리를 올리면 미국 정책금리는 연 1.75~2.0%가 된다. 이번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오히려 시장이 충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파월은 이미 신흥국과 거리 두기에 나섰다. 지난달 스위스 취리히 연설에서 파월은 “다른 나라 금융시장에 미치는 미국 통화정책의 역할이 과장돼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Fed가 신흥국에 연민을 느낄 것이라는 데 베팅하지 말라”고 전했다.

파월이 이번에 미국의 중앙은행장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예상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미국 경기가 뜨겁다. 2009년 6월 시작된 경기 확장기는 이번 달로 107개월째로 접어들었다. 1991년 5월부터 120개월간 이어진 확장기에 이어 가장 긴 기간이다.

근거도 충분하다. 한국은행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목표로 하듯, Fed도 지켜야 할 이중책무가 있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다. Fed는 두 마리 토끼를 이미 다 잡았다.

완전고용은 물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자연 실업률 수준을 의미한다. 미 의회예산처(CBO)에서 추정한 미국의 자연 실업률은 4.62%. Fed가 추정한 자연 실업률은 4.5%다. 지난달 미국 실업률은 3.8%를 기록했다. 완전고용 수준을 밑돈다. 여기에 물가도 Fed의 목표치인 2%를 찍었다. 올 4월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지수 상승률은 전년 대비 2.0%를 기록했다.

Fed가 전망하는 올해 경제성장률은 2.7%다. 여기에 1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 부양과 3000억 달러 수준의 연방지출은 경기를 더욱 달굴 요인이다. 토르스텐 슬록 도이체방크 수석 국제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경기 침체보다는 경기 과열을 우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관심은 향후 Fed의 금리 인상 속도와 폭으로 쏠린다. 파월이 미국의 중앙은행장 역할에 집중하면 올해 4번 인상까지도 가능해서다.

Fed 입장에서 경기 과열 우려뿐만 아니라 금리 인상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향후 경기 침체에 대비해 금리 인하와 같은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이코노미스트 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8.8%는 2020년에 미국 경제가 침체로 들어설 것으로 응답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펼치는 재정적자 정책 등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만큼 Fed가 이에 대비해 선제적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파월이 긴축의 페달을 세게 밟으면 신흥국은 긴축 발작에 떨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6월 위기설’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아르헨티나와 터키, 브라질 등 세계 경제의 약한 고리가 이미 흔들리며 한차례 몸살을 앓았다.

아르헨티나는 7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5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2016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자 중앙은행은 통화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섰다.

터키와 인도 등은 통화가치 급락에 시달리자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며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인도중앙은행은 지난 6일 4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24일 조기 대선을 앞둔 터키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달러를 비축하지 말고 리라화로 바꿔 달라고 촉구할 정도다.

파월이 앞으로도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변심하지는 않을 듯하다. 브릭클린 드와이어 BNP파리바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의 긴축 발작을 잡음 정도로 여기는 시각이 많다”며 “두려움 때문에 Fed가 정책 방향을 바꿀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