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코앞 닥친 근로시간 단축, 현장 혼란에도 정부는 팔짱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주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다음달 1일 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을 시작으로 시행된다.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활동과 노동시장에 가히 혁명적 변화를 불러올 만한 중대 사안이다. 하지만 일선의 기업과 근로자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법령과 규정은 까다롭지만 구체적 상황 적용은 애매하기 때문이다. 가령 부서 회식이나 거래처와의 식사, 출장 중 이동 시간 등을 업무로 봐야 할지를 놓고 해석이 제각각이다. 대기 시간이 긴 운전기사나 영업직원의 근로 시간은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도 고민스럽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면 사업주가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 정부의 구체적 지침 없이 기업이 자의적으로 규정을 만들기는 힘들다.

산업계에선 주 52시간 근로제가 현실을 무시했다는 불만도 여전하다. 개정안 적용을 받지 않는 특례업종을 지나치게 좁혀 놓았기 때문이다.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해외 건설, 정보기술(IT)이나 벤처업체 등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됐다. 24시간 시설을 돌려야 하는 장치산업, 소수의 근로자가 장기간 고립돼 일하는 해양플랜트업체 등도 인력 운용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특례업종 확대와 탄력 근로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노사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지난 2월이다. 이제 시행이 20여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정부는 현장의 혼란을 해소할 구체적 가이드라인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각종 부작용이 예고됐는데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완책 제시도 미적거리고 있다. 이 사이 근로자와 사용자 양측 모두의 혼란과 불만이 쌓이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또 한 번의 정책 효과 논란에 휩싸일까 걱정이 커진다. 정교한 지침과 보완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