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관훈토론회 일문일답 |"피부로 느낄 민주화조치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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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수환 추기경은 관훈토론회에서 약20분간 준비해온 원고로 종교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조연설을 하고 이어 송진혁 중앙일보논설위원·김용구 한국일보 논설위원·송정숙 서울신문 논설위원·장행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등 질의자의 질문에 응답했다. 공개 걱 인 토론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인 김 추기경은 정치문제에 대해 인권이 존중되는 정치가 이루어져야한다는 입장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 사생활에 대한 답변에도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였고 답변 사이사이에 유머 섞인 대답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질의응답으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개신교 교회가 10월 평양에서 완공된다고 하고 성당축성도 있다는데 북한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지. 또 바티칸을 통한 남북 교회교류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북한과의 교류가 없다. 바티칸에 북한 신자 6명이 올해 부활절 무렵 간 일이 있고 북한학생 1명이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북한측에서 접촉을 희망하면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때로는 우리측에서의 제안도 필요하다.
-개헌과 선거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는데 민주화는 제대로 될 것인지, 또 그 방향은 바로잡혔는지, 속도는 빠른지 느린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인데…. 시험 당하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낙제점」은 아니라고 본다. 국회의원선거까지 끝난 지 이제 4개월밖에 안되었으니 더 두고 보아야한다.
여소 야대 국회를 보면서 정국불안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오히려 균형이 생기고 있고 이제야말로 정치력이 발휘되어야 할 때다. 구인제 때 대통령의 거부권을 야당이 큰 반발 없이 넘긴 것 등에서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려는 긍정적 모습이 보였다.
-민주화를 어떻게 풀어야할 지….
▲국민전체가 점진적 민주화에 대한 인내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사회안전법·노동관계법 등이 개폐의 말만 있고 진행이 안 되고 있다. 또 양심수석방도 기대만큼 되고 있지 않다.

<북한교회 접촉용의>
-기도할 때 떠오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며 누구를 위해 기도하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개신교 쪽에서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선언」이 나왔다. 가톨릭의 입장은.
▲주교회의 등에서 공식표명은 없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깊이 연구하고 있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통일을 하느냐는 개념정립이 필요하다. 40년 분단으로 이념·체제가 달라져 무조건 통일될 수는 없다. 민주화를 전제로 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집권자들은 정말 통일하려는 의지를 가져야한다. 분단으로 기득권을 확보한다는 생각이 조금도 있어서는 안 된다.
통일을 위한 남북의 접촉은 공식적인 것은 정부창구로 일원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의 협조·양해 아래 민간차원의 접촉이 많이 이루어져야하며 이 같은 대화가 더 효율적이다.
-필리핀의 「하이메·신」추기경이 한 역할을 높이 평가한 일이 있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정·교 분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신 때 박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이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순화· 위안해 주는 것이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나는 『복음은 그 시대 인간의 삶·고통에 깊이 동참하는 것이다. 종교는 윤리도덕을 바로 세워 인간의 삶을 바르게 해준다. 윤리도덕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나오고 그것은 정치·경제·사회를 더나 있을 수 없다. 우리 나라가 민주 국가가 되고 인권이 존중되는 국가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70년대 이후 시대가 요구하여 정치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선거자체나 일상의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바른 윤리의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말할 뿐이다. 최근에는 주의 깊게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정치에 대해 좀처럼 말하지 않아 왔다.

<극우·극좌는 통해>
-2년 전 『급진학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학생들은 손에 든 각목과 화염병을 버려라』고 말씀한 것으로 안다. 좌경문제가 심각해져 올림픽이후 자유민주주의냐, 좌경사회냐에 대한 국민선택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좌경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그 실체는 나도 모른다. 우리가 오랫동안 반공교육을 했는데 좌경화 되는 학생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에서 수입된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군사독재를 통해 너무 오른쪽으로 꺾으니까 반동도 심해져 좌측으로 기우는 것도 심해졌지 않느냐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극우와 극좌는 통한다.
극우가 나오면 나올수록 문제는 커진다. 학생들이 다소 좌경화 된다고 하나 그들이 자기 눈으로 계층의 차이가 없어지고 인권이 보장되는 것을 보면 줄어들 것이다. 학생들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하는 것은 어떨지. 너무 이상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남북학생 회담을 하고 또 북한을 다녀오기도 해서 공산주의를 피부로 느껴보고 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민주화를 위해 어떤 일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누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염려 없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정치지도자의 존재가 절실하다. 여야 관 없이 그런 지도자가 요구된다.·
지금 두 야당이 있는데 다 지역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역감정의 원인이 되고 있다. 두 당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사심 없이 마음을 비우고 한 당이 된다면 신선할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지도자가 요구된다.
-첫사랑의 여인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별명은, 또 봉급은 얼마인가.

<노 대통령에 기대>
▲사랑이 참 많았지. 아 첫사랑은 처음 사랑이니 하나밖에 없지. (웃음) 초등학교 때 옆자리의 소녀가 아름다와 혼자 좋아했는데 고백은 못했소. 얼굴이 검어서 「깜둥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성직자는 봉급이 없고 생활비· 활동비를 받는다.
-장승제가 일부 기독교인들의 주장으로 올림픽 행사에서 제외되었는데… .
▲민속종교를 연구한 일이 없어 잘 모른다. 국민들이 미신으로 알고 있는지 혹은 토속문화로 알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나 자신은 후자로 생각하고 있다.
토속문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말릴 필요는 없지 않는가.
-노 대통령을 어떻게 보는지. 추기경은 지난 대통령선거 후 패배한 63%쪽에 투표했다고 말한 일이 있다.
7월 초 노 대통령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나.

<언론 체제 옹호적>
▲청와대 회담한 것 알면 내용도청까지 할 일이지 (웃음) . 그냥 환담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길 원해 야당에 투표했다. 한이 맺혀있는 분과 마음으로 같이 있기를 원했다.
지금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존경한다. 민주화를 위해 일할 것으로 본다.
-내년 성체대회에 남미해방신학자 「까마라」 대주교(브라질)를 초청했는데.
▲대회연사로 모실 예정이나 정식초청 안 했다. 교황은 2천년 교회의 전통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결코 보수적이 아니다. 인권·사회정의에 누구보다 투철하다.
-바티칸의 매개로 평양 가톨릭과 적극 접촉하고 교회신축도 지원할 용의가 있는가.
▲다소 이용당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접촉할 용의가 있다. 교회신축 지원문제도 경우에 따라 우리가 제안할 수도 있다.
-언론자유가 지켜진다고 보는가.
▲언론이 체제 옹호적이라 느낄 때가 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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