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금융·국영업체로 숙정 마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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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80년 여름의 숙정은 금융 및 국영기업체 등 정부 산하단체를 끝으로 마무리 됐다.
이들 비 공무원들에 대한 숙정은 하위직 공무원 다음에 단행됐지만 대상 선정 자체가 늦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금융기관 등에 대해서는 6월 중순 이미 감사원 감사 및 보안사의 체크가 있었다. 이어 6월26일 이승윤 재무장관이 숙정 지침을 시달했으며 은행감독원 및 금융기관은 대상자 선정을 벌어 7월초 그 명단을 재무부에 통보했다. 조직·인원이 방대한 농·수협과 한전은 약간 늦게 명단을 확정했다.
공직이면서도 기업적인 성격, 즉 돈을 만지는 직종에 대한 신 군부의 의혹은 정부의 세무 및 경제부처에 대한 것보다 더 강했다.
『금융·국영기업의 인적 구성이나 업무가 여러 면에서 취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공무원 숙정에서도 그랬지만 숙정은 많은 자리를 새로 만들어 내고 그것은 정권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에게 여간 긴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승진기회를 열어주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공무원의 경우 그간 국장 5년이면 차관보로 승진됐지만 그 당시는 7∼8년이 돼도 어려울 정도로 적체현상이 있었습니다. 국·공영 기업엔 외부에서도 비집고 들어올 인사들이 많았습니다. 공포분위기 조성으로 새 권력 착근에 도움도 받고 혼탁한 공직 사회를 정화한다는 일석 사, 오조의 효과를 거두는데는 국·공영기업의 정화가 요긴하게 이용됐습니다.』
이때 쫒겨난 국·공영기업 간부들은 .대부분 신 군부의 엽관 의도 때문에 희생자가 많았다고 믿고 있다.
금융기관, 국·공영기업을 숙정하는 데는 군부 뿐 아니라 정부부처의 이해도 어느 일면 일치했다. 산하기관에 자리가 생긴다는 것은 감독관청으로선 내심 환영할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보위보다 관련부처가 더 적극적이었던 예가 허다했다.
이승윤 재무장관이 6월26일 시달한 숙정 지침은 이런 분위기를 잘 대변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사명감을 망각한 채 무사안일과 기밀누설 등 각종 부조리를 저지르는 공직자가 발견되고 있다.
각 기관장은 사회의 지탄을 받는 부적격자를 자체적으로 색출해 과감히 숙정 하라. 이번 숙정에는 임원 및 지점장·부장 등 고위직 부적격자를 가러내는데 중점을 두되 하위직이라도 구체적인 부조리 사항이 있으면 가차없이 엄단하라. 지휘·감독 책임자에 대해서도 면직 등 강력한 인사를 취할 것이다. 부조리 유형은 ▲이권개입 ▲대출 등 여신업무· 사채발행 등 유가증권처리와 관련된 뇌물수수▲기밀 누설▲거액 부실채권 유발▲횡령▲민원업무관련부조리▲무사안일·책임전가 등 복무기강 문란▲유언비어·허위투서 행위▲각종 부조리 묵인·비호▲감사·조사 등 지도·감독 상 부조리 등이다.
5·21개각으로 입각한 이 장관의 10개항 예시는 즉시 실행에 옮겨졌고 대상자들이 속속 취합됐다.
국보위는 각 기관 간부들에게 일반 직원들에 대한 숙정을 하도록 독려하고 마지막으로 간부들에 대한 심사를 직접 맡아 했다.
한은 및 은행감독원의 숙정실무를 맡은 이정열 부총재 (현 신한투자 사장), 조천식 감독원 부원장, 추인석 인사담당이사 (현 동서투자사장) 가 물러난 것은 이런 아이러니의 한 단면이다. 사회정화분과위의 요청에 따라 숙청 가부를 평가하는데 협조한 이 모 검사역의 숙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확도야 어쨌든 일찍부터 추적 받은 금융기관 대상자들에 대한소문이 속속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7월초 『모 은행장이 대출부정 건으로 숙정 될 것』 『모 검사역은 감독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얘기가 적중했던 것이다.
『정부 산하 및 공익단체가 8천여 개에 이르므로 일괄정화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기구 및 인원규모·기능의 중요성 등을 감안, 우선 1백27개를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전체 임직원의 1·5%인 3천1백여 명을 정화했고 임원 급 이상은 1백76명이었다』는 것이 국보위 측의공식 설명.
중소기업·국민·주택·서울신탁은행장을 비롯, 보증보험사장·증권금융사장· 주공사장·영화진흥공사사장·국제문화협회장 등 기관장은 11명이었으며 임원은 40%가 쫓겨났다.
특히 농협에서는 부회장 급 3명·이사 2명·조합장 2백27명 등 모두 7백23 명이, 수협에서는 부회장 급 2명·이사 3명·조합장 26명 등 4백89명이 숙정 되는 등 유례없는 해직사태였다.
한일은행은 1차에 17명을 올렸다가 2차에 3명을 추가, 통과했다. 이때 2차에 포함된 김 모 씨는 경고나 견책 한번 안 받았다는 것.
한은은 1차에 16명을 자르겠다고. 보고했다가, 호통 받고는 25명을 올렸으나 계속 기합을 받아 3차로 35명을 올려 가까스로 OK를 얻었다.
한 관계자는▲대소사건 관련자▲원리원칙대로 (융통성 없이)임하던 사람▲윗사람 지시를 안 따르는 사람들이 나갔다고 주장하며 감독원 특감실의 「염라대왕」으로 불리던 이모 검사역이 나간 것은 업무의 원칙처리가 문제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거액 부실채권 전담자로서 문책을 가한 건수가 가장 많았다는 얘기인데 감독원이 시중은행에 앙케트를 돌렸더니 가장 먼저 내보내야 할 사람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체 숙정을 주도한 부총재·부원장·인사담당 중역이 숙정 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한은은 이밖에도 여러 면에서 일화를 남겼다.
한은은 35명을 해직시켜놓고 이들에게 재직중의 공로를 기려 「한은패」를 증정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해직 1개 월 여 뒤 수여된 이 패에는 「귀하가 당 행 재직 중 남긴 공로는 당 행 발전에 큰 힘이 되었기에 퇴직에 즈음하여 한은 패를 드리면서 귀하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1980년 7월 19일 총재 김준성」이라는 문안이 새겨있다. 7월19일은 바로 이들이 면직된 날짜.
숙정자 중에 노령자나 장기 근속자가 포함됐다고 하지만 관련기관은 동료를 잘라낸 아픔을 이런 식으로라도 다스리지 않으면 안됐다. 기념패에서 공로 운운한 것은 결국 숙정은 본의가 아니었으며 누군가 대신해 희생돼야 했기에 마지못해 내보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한은은 또 김용덕·김철현·한무영씨 등은 1계급 승진시켜 「명예퇴직임을 확실히 하기도 했는데 해직자들은 상사가 부르더니 『날 좀 봐 주시오 .할당된 숫자가 있으니 어떻게 하겠소』라며 애걸했었다고 술회했다.
『당신이 안 나가면 다른 사람이 나가야 하니 어쩌느냐. 좋은 자리를 알선해주겠소』라는데 더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도 했다.
공무원 숙정 당시 「나가주는」 3명에게 직원들이 돈을 모아 6백만 원 씩의 위로금을 만들어준 마포 세무소의 경우와 한은의 경우 숙정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케이스였다.
이렇게 해서 공무원·공직자 숙정은 매듭지어졌고 모두 1만여 명이 직장을 잃었다. 이들에게는 일정기간 정부기판은 물론 유관업체에 취업조차 못하게 하는 2중의 족쇄가 채워졌다. 또 퇴임 대법원판사들도 1년이 지나서야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었고 반정부인사가 될 것을 우려, 외국여행도 금지됐다.
국보위는 『부정을 저지른 자에게 가혹한 제재를 가하고 퇴직공무원이 유관업체에 취업, 관청출입을 전담하면서 부정을 자행해온 폐단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사후조치를 설명했지만 별다른 기술·자격 없이 숙정의 꼬리표까지 붙은 다수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거의 『죽고 싶을 뿐』이라고 했고 숙정이 원인이 돼 화병·사고 등으로 죽은 사람도 적지 않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이들이 몸부림치던 과정, 그리고 이들의 성공·실패담은 수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죽으려 했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을 생각, 차마 그러지 못하고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했습니다. 날품팔이·행상도 해봤습니다. 집사람은 가정부가 됐고….
『처자식들에게 쫓겨났다는 소리를 차마 할 수 없어 아침에는 출근하는 양 집을 나와 공원·남산 등지를 헤맸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나로 인해 자식까지 정신이상이 됐습니다. 무엇으로 보상을 받겠습니까.
『퇴직금까지 사기 당한 남편은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85년 1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20년 공무원 생활동안 징계 한번 안 받은 그이가 왜 직장을 쫒겨나 그렇게 숨져야 했습니까.
하나같이 『죽고 싶었다』로 시작되는 이러한 호소들은 그들의 공직 재직 중 잘 잘못을 떠나 80년이 남긴 비극성을 설명해주고 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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