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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아 고종수·이천수 “승우야, 두려움 없이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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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승우가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손흥민의 결승골을 돕는 등 성공적인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대구=양광삼 기자

이승우가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손흥민의 결승골을 돕는 등 성공적인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대구=양광삼 기자

“선수 시절 날 보는 것 같다.”

‘당돌한 축구 천재’ 계보 세 사람 #언변·스타일·쇼맨십 등 공통점 #천재 소리 듣지만 모두 노력형 #“이승우 부진할 때도 감싸줬으면”

‘밀레니엄 특급’ 이천수(37)와 ‘앙팡 테리블’ 고종수(40) 대전 시티즌 감독은  ‘코리안 메시’ 이승우(20·베로나)를 지켜보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축구선수로서 세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거침없는 언변과 화려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그라운드 위 쇼맨십까지. 반항아 느낌이 강해 호불호가 갈렸지만, ‘불호’마저 실력으로 잠재웠다.

축구대표팀 선수 활약 당시 고종수. [중앙포토]

축구대표팀 선수 활약 당시 고종수. [중앙포토]

2006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토고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터뜨렸던 이천수(14번). [중앙포토]

2006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토고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터뜨렸던 이천수(14번). [중앙포토]

고종수는 20살이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축구사에 남을 왼발 킥을 뽐냈다. 거칠 것 없었던 그는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천수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날카로운 프리킥 골을 뽑아냈다. 이름의 ‘천’자에서 착안한 별명 ‘밀레니엄(1000년) 특급’으로 불렸다.

‘당돌한 천재 악동’ 계보를 20살 이승우가 이어갔다. 이승우는 A매치 데뷔전이던 28일 온두라스와 평가전에서 후반 15분 손흥민의 골을 도우며 2-0 승리에 일조했다.  비록 득점은 없었지만 움직임마다 감탄을 자아냈다.

고종수와 이천수는 과연 이승우를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29일 두 사람을 인터뷰했다. 이천수는 “나와 비교를 많이 해 유심히 봤다. 축구는 개인기 싸움인데 드리블 쇼를 펼치며 슛을 때리더라”고 칭찬했다. 이어 “키가 10㎝ 이상 더 큰 선수와 신경전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퇴장당하지 않는 선에서 맞서는 건 팀에 활력소가 된다.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이 우리를 깔보더라도 승우처럼 쫄지 말아야한다. 난 승우가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광고판을 걷어차는 것도 승리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 ‘당돌한 천재’ 계보

한국 축구 ‘당돌한 천재’ 계보

고종수 감독은 “한국 팬들은 정서상 말없이 열심히 하는 선수를 좋아하지만, 천수나 승우처럼 자신감 넘치는 선수가 팬을 끌어모은다. 천수는 스페인에서 태어났다면 더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라며 웃었다.

고종수는 1997년 1월 뉴질랜드전에서 한국 A매치 최연소 득점기록(18세 87일)을 세웠다. 이천수는 2000년 4월 A매치 데뷔전이던 라오스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이천수는 “대표팀 경기는 국민이 지켜보는 오디션과 다름없다. 대표선수 초기에 허정무 감독님이 (이)영표 형과 순발력 대결을 시켰는데 (부담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승우는 데뷔전에서 어시스트까지 하고 (부담을) 이겨냈다”며 대견해 했다.

축구대표팀에서 활약했을 당시 고종수. [중앙포토]

축구대표팀에서 활약했을 당시 고종수. [중앙포토]

셋 다 ‘타고난 천재’보다는 ‘지독한 노력파’에 가깝다. 이승우(1m70㎝), 이천수(1m74㎝), 고종수(1m76㎝) 모두 큰 키는 아니다. 이천수는 “‘작아서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매일 새벽 집에서 학교(부평고)까지 6㎞를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고 감독은 “사실 기자들이 ‘튀는 아이’로 포장했지만, 침대에 왼발목을 걸고 잡아당기는 훈련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복숭아뼈에 불이 난 것처럼 뜨거울 정도였다”며 "승우가 어릴 적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건너가 정말 많은 드리블 연습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우는 이탈리아로 옮긴 뒤 덩치 큰 상대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나무에 몸을 부딪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2001년 세네갈과 평가전 당시 경기에 나선 이천수. [중앙포토]

2001년 세네갈과 평가전 당시 경기에 나선 이천수. [중앙포토]

‘천재’란 꼬리표는 부담이다. 이천수는 “팬클럽 이름이 지니어스(천재)였다. 개인적으로 노력형이라 생각하는데 천재라고 해 억울했다. 키 작은 승우도 노력을 통해 지금까지 올라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감독은 “기분 좋은 말이지만 한편으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못하면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한다”며 “승우가 때때로 부진해도 감싸줬으면 한다. 그래야 계속 당돌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고 당부했다.

후배에게 애정 어린 조언도 남겼다. 고 감독은 “난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축구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상상했다. 덕분에 크로스 타이밍에서 허를 찌르는 슛이 가능했다”며 “승우도 다양한 상황에서 드리블을 칠 지, 패스할 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월드컵 무대는 평가전보다 몇 배 강한 피지컬과 멘털이 필요하다. (준비해야) 찰나의 순간 자연스럽게 나온다. 과도한 드리블보다 장점인 스피드를 앞세워 때론 빈 몸으로 골대로 향하는 움직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대한민국-온두라스 친선경기에서 대한민국 이승우가 교체한 뒤 신태용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대한민국-온두라스 친선경기에서 대한민국 이승우가 교체한 뒤 신태용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이승우는 23명의 최종엔트리를 향해 경쟁 중이다. 이천수는 “2002년 당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못 나가면 축구를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히딩크 감독님에게 1등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두려움 모르는’ 천수가 됐다. 승우도 월드컵에 무조건 나간다고 믿으면 ‘두려움 없는 승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정말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박린·김지한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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