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한국…낙관도 비관도 말자|최상룡 <고대 교수·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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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인의 경우 나이 40이면 불감이니 부동심이니하여 자율적 인간으로서 성숙했음을 나타낸다. 우리도 건국 40년이 된 지금 자기 위상을 뚜렷이 할 때가 왔다고 본다. 1945년의 8·15는 일제의 쇠사슬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기쁜 날이었지만 그 8·15가 우리 민족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고 타율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국토 및 민족 분단의 기점이었다는 점에서 어설픈 출발이었다.
그후 우리는 분할 점령·동족상잔의 한국 전쟁, 그리고 쿠데타로 시작하는 권위주의 체제 이에 저항하는 민중 운동 등 실로 가시밭길을 걸어 왔다. 그러한 과정에서도 우리는 민족의 저력을 발휘하여 이제 전세계인의 화제가 되었고 9월에 열리는 올림픽에는 밝고 어두운 한국인의 참모습이 전면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경이로운 경제 성장을 했으나 각종의 공해 또한 심각할 정도이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지만 교통 사고 최고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굴지의 재벌을 낳았지만 아직도 생존 자체에 허덕이는 영세민이 적지 않다.
이러한 양극적인 현상은 결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며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물질적인 성장의 면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으나 인간의 권리와 성명의 존엄성이 상대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이 두가지 현실 가운데 어느 한쪽 현실만을 강조하는 지나친 낙관과 비관의 상보다 이 두가지의 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하여 당면 과제로는 어두운 현실의 극복에 전력을 기울이되 장기적으로는 민족의 장래를 밝게 전망하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이러한 장기적인 낙관주의를 밑받침하는 자원으로서 나는 다음과 같은 우리 국민의 의식상의 큰 변화에 주목하고 싶다.
첫째, 민족과 국가 수준에서의 자신이다. 여기서 굳이 수량적 지표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의 경제적 성과는 서방 세계는 물론 동구·중국·소련 등 공산 국가들의 호의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만큼 되기까지에는 경제인의 맹렬한 성취 동기·정부의 지원·양질의 노동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교육 등이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을 것이다. 4백년의 서구, 1백년의 일본이 이룩한 산업화를 반세기도 안되어 질주해오다 보니 그 부작용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경제 성장 결과는 이 체제의 수혜층만이 아니라 비판층, 심지어 체제의 혁파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공산 국가 소련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성악가 「넬리이」씨가 한번도 와 보지 못한 아버지의 조국 한국의 제품이 유럽 시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얘기에서 우리는 가장 티없고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둘째, 정치 지도층의 자기 반성의 모습도 눈 여겨 볼만하다. 해방 후 한국의 많은 정치 지도층은 결코 바람직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다. 친일 세력·반 통일 세력·우리 국군 전체의 수에 비하면 한줌도 안 되는 극소수의 정치 군인,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민간 정치인 등이 다 그 속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충원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도 이제 대세에 역행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에 걸 맞는 자생의 몸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우리의 군부에는 정권욕을 누를 길 없어 틈만 있으면 폭력 수단을 동원하여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사료되며,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시대의 변화가 그를 자제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 국민은 전선에서 나라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국군상을 만들어 나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뛰는 우리 정치인들도 자기 나름의 뚜렷한 식견 없이 산업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국민의 의사와 마음에 반하는 정치 지도자의 행적이 얼마나 처참한 심판을 받는가 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세째,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의 하나는 민중의 자각일 것이다. 아직도 학술적으로는 민중에 대한 엄밀하고 정확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민중 개념에 대해서는 환상도 있고 냉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만인의 합의를 얻을 수 있는 개념의 창출에 앞서 현실적으로 재야·청년 학생·기층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엄청난 운동 세력이 엄존하고 있으며 그들은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정부·여당 및 체제 내 야당과 함께 강력한 정치의 실세로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통치의 객체로서가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서 발돋움 하려하고 있다.
실제로 운동 수준에서 그들은 우리 사회 변화의 주역이 되어 왔다. 그 어느 정치 세력도 경제 성장만큼이나 놀라운 이 민중 부문의 성장을 흡수함이 없이 정치적 성공을 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급격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도 부정적인 면이 많이 표출되고 있듯이 민중 부문의 성장 과정에서도 지나침이 적지 않다. 폭력을 수반한 직접 행동을 능사로 하는 추세가 있는가 하면 민중을 혁명적 체제 변혁의 주력군으로 몰아붙이려는 경향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과 함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안목에서 보면 민중의 자각과 성장은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봐도 나라를 망치는 것은 부패한 지배층이지 운동의 담당 세력인 민중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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