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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으로 2만명분 필로폰 만든 사위·장인 잡고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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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폰 제조공장으로 변한 기계공장 [부산지검 제공=연합뉴스]

필로폰 제조공장으로 변한 기계공장 [부산지검 제공=연합뉴스]

미국 드라마나 영화 속 내용처럼 감기약에서 추출한 원료로 필로폰을 제조해 판매하려던 장인과 사위가 검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배운 방법으로 진짜 필로폰을 만들었다고 믿었지만 검거된 뒤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8일 부산지검 강력부(장동철 부장검사)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으로 전직 제약회사 직원인 A(40)씨와 판매책 B(45)씨를 구속기소 하고, A씨 장인인 C(55)씨와 판매책 공범 D(35)씨를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A씨는 올해 2월부터 3개월간 장인 C씨가 운영하는 서울 신도림의 한 공장에 제조 장비를 차리고 필로폰 원료인 슈도에페드린이 함유된 감기약과 각종 화학약품을 이용해 필로폰처럼 생긴 백색 가루 660g을 제조한 혐의다. B, D씨는 A씨가 제조한 백색 가루 380g을 판매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제약회사에 재직했던 A씨는 감기약에 필로폰 원료인 슈도에페드린 염산염이 소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장을 운영하는 장인 C씨와 필로폰을 만들기로 했다.

장인과 사위는 사업이 실패하는 등 가정형편이 어렵게 되자 의기투합했다. 필로폰 제조법은 인터넷에서 습득했지만, 필로폰 원료를 다량 확보하는 방법이 관건이었다.

제약회사 재직 때 가지고 있던 감기약을 포함, A씨는 C씨와 함께 평소 친분이 있는 약국 4∼5군데를 돌며 한 번에 최대 1000정 등 150만원을 들여 모두 7200정의 감기약을 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약사회가 일선 약국에 슈도에페드린 제재가 포함된 감기약을 최대 3일분까지만 판매하도록 지시한 권고사항은 있으나 마나였다.

A씨는 C씨의 공장에 각종 화학약품, 가열·정제 기구, 건조기 등을 갖춘 뒤 3개월간의 시행착오 끝에 감기약에서 필로폰 원료를 추출해 ‘필로폰’ 660g을 제조했다. 이는 1회 필로폰 투약분 0.03g 기준, 2만2000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필로폰 제조 소식을 전해 듣고 필로폰을 대신 판매해주겠다고 연락한 B, D씨는 A씨에게서 넘겨받은 백색 가루 380g을 부산에서 4000만원에 팔려다가 검찰 수사관에게 체포됐고 A, C씨도 뒤이어 검거됐다.

A, C씨는 물론 판매책인 B, D씨 역시 마약 전과가 전혀 없었다.

검찰이 압수한 필로폰을 분석해보니 실제로는 필로폰 성분인 메스암페타민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가짜로 판명됐다.

검찰은 A씨가 필로폰 원료 추출은 성공했으나 정제 기술이 떨어져 실제 필로폰을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봤다.

장동철 부산지검 강력부장은 “감기약으로 필로폰을 만드는 방법을 인터넷에 찾을 수 있어 모방범죄가 우려된다”며 “식약처 등 관계기관이 약국의 감기약 대량 판매를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드라마는 물론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제조법을 익힌 일반인이 필로폰을 만들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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