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이는 전직 검찰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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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깍듯한 인사.

"잘 치십시오." 골프채를 손에 든 남녀 고객들이 함께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응대했다. 골프 카트 안에서 그에게 물었다. "주말 골퍼들의 꿈인 골프장 회장이 되셨으니 더 바라실 게 없겠네요."

운전을 하던 경기과 직원 방수미씨가 대신 대답한다. "더 좋은 것은 캐디들 사이에서 '인기짱'이란 거예요."

전직 검찰총수가 골프장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경기도 용인시 신원CC 신승남(62.사진) 회장. 두 해 전에 이어 지난달 회장에 재추대됐다.

5년 전인 2001년 5월 검찰총장 취임한 다음날 그는 확대 간부회의에서 퇴임 후 정치에 몸 담지 않고 사건변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는 "공직에서 물러나면 골프장 사장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는 꿈을 이뤘다. 신 회장은 청와대 정무비서실에서 근무할 때인 1971년 선배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았다.

그는 새벽마다 연습했다고 한다. 불과 5년 만에 싱글 골퍼가 됐다. 지금은 80대 중반의 스코어를 유지한다.

그가 골프장 회장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워낙 골프를 좋아한 데다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과도 고교(목포고) 동문이었기에 92년 신원CC가 탄생할 때 회원이 됐다. 98년 외환위기 때 골프장이 경매에 부쳐지자 750명 회원의 뜻을 모아 골프장을 375억원에 낙찰받았다. 회원들이 골프장 주인이 된 것이다.

골프장 경영인으로 변신한 그는 스위퍼(잔디를 깎은 뒤 먼지를 빨아들이는 차량)를 자체 제작했다. 수입가는 9000만원인데 국산화를 통해 3500만원으로 비용을 줄였다.

손님들을 위한 배려도 수준급이다. 티 박스에 오르고 내리는 두 개의 계단 사이를 화단으로 꾸몄다. 혹여 성질 급한 손님이 계단 사이로 올라가다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손님들에게 빨간 공을 선물하고 여름에 라운딩이 밀리면 수박 한 접시를 무료로 제공한다.

글=정선구,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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