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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도 답했다,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공간은 이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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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올해 처음 건축전에 참가한 교황청은 베니스 산 조르지오 섬에 '바티칸 예배당' 10개를 설치했다.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의 작품.

올해 처음 건축전에 참가한 교황청은 베니스 산 조르지오 섬에 '바티칸 예배당' 10개를 설치했다.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의 작품.

 제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24일(현지시간) 개막하면서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 조르지오섬은 예배를 위한 섬으로 탈바꿈했다. 건축전에 첫 출사표를 던진 교황청관이 작품 ‘바티칸 예배당’을 설치하면서다. 전세계 건축가 10명이 지은 실제 크기의 예배당 10개가 숲 속에 자리 잡았다.

'바티칸 예배당' 설치, 건축전 첫 참가 교황청관 #올해 주제 '자유공간' 가장 잘 구현했다 평가 #올해 황금사자상 수상한 스위스관 '하우스 투어' #크고 작은 문 통과, 다양한 스케일의 집 꾸며

개막일에 둘러본 숲 속 예배당은 기도와 묵상을 위한 공간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본전시에서 들판에 지어진 건축물 사진 두장으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의 작품이 대표적이었다. 2011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베이지색 라임스톤으로 예배당을 만들었다. 돌로 벽을 세우고 그 돌을 얹어 지붕을 만들었다. 경당 내 십자가마저도 마치 돌에 그어진 금처럼 보일 정도로 모든 것이 자연에 가까웠다. 아주 오래전부터 터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공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 비결은 돌에 있었다. 건축가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세계문화유산 도시 비첸차에서 돌을 가져왔다. 성당의 일부였다가 해체된 돌이었다. 건축가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교회도 아니고, 성소도 아니고, 무덤도 아닌 그냥 장소”라고 설명했다. 오래되었지만 밝은 빛깔의 돌로 만든 ‘그냥 장소’는 빛의 음영만으로 깊이감을 달리했고, 사유하게 만들었다.

올해 처음 건축전에 참가한 교황청은 베니스 산 조르지오 섬에 '바티칸 예배당' 10개를 설치했다.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의 작품.

올해 처음 건축전에 참가한 교황청은 베니스 산 조르지오 섬에 '바티칸 예배당' 10개를 설치했다.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의 작품.

최근 지어지는 성당이 추하고 기도에 적합하지 않다는 교황청의 문제제기에 대한 건축가의 답은 이처럼 간결했다. 교황청은 전시가 끝나면 10개의 예배당을 필요로 하는 곳에 옮겨 실제로 사용할 계획이다. 서울시립대 배형민 교수(건축학부)는 “교황청이 건축전에 참가해 예배당을 작품으로 내세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상황”이라며 “요즘 교회가 처한 상황의 돌파구로써 건축으로 순수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흥미롭다”고 진단했다.

교황청관은 올해 건축전의 주제인 ‘자유 공간(Free Space)’을 가장 잘 구현한 공간으로 현지에서 각광 받았다. 이는 건축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자며 올해 총감독을 맡은 아일랜드 건축가 이본 파렐과 셀리 맥나마라(그래프톤 건축사무소 공동대표)가 내놓은 문제이기도 했다. 총감독은 “건축이 길거리에 놓인 한 덩어리의 물체가 아니라 생각하고 상상하고 기회가 될 수 있는 자유공간이길 바란다”며 “피난처이자, 영혼을 고양해주는 공간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건축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건축에서의 자유공간이 무엇인지를 놓고, 총감독이 직접 큐레이팅한 71명의 건축가가 참여한 본전시와 국가별로 참가하는 63개의 국가관에서 설왕설래가 펼쳐졌다. 전시관 내 식물을 설치한 호주관처럼 자연성의 회복을 강조하거나, 국경지대의 건축 프로젝트를 다룬 독일관처럼 정치 이슈를 끌어들이거나, 미래의 농촌을 주제로 한 중국관처럼 공공 프로젝트를 전시하기도 했다.

제 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참가한 71명의 건축가 그룹 중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제 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참가한 71명의 건축가 그룹 중 포르투갈 건축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올해 건축전의 국가관 중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스위스관은 ‘스위스 240: 하우스 투어’라는 주제로 전시장을 다양한 스케일의 집 내부로 꾸몄다. 크고 작은 문을 통과하다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의 스케일이 과연 우리 몸에 맞는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중국 꾸이양시 근교 러우나촌 건축마을 프로젝트로 중국관 전시에 참여한 건축가 승효상은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사회문제에 참여해 해결하려는 이른바 건축의 공공성에 관한 이야기는 줄곧 해오고 있으나 파편적인 경향이 있다”며 “건축계가 좀 더 연대하고 중지를 모을 수 있는 장으로 건축전이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유공간을 찾아 60년대로 떠난 한국관 

한국관 개막식 전경.

한국관 개막식 전경.

한국관 주제는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이다. 1960년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기공)의 작업에 주목했다. 한국관의 박성태 예술감독(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은 “국가 주도의 건설과 토목 중심의 시대에 이례적으로 건축가 김수근이 기공의 사장을 역임하며(1968~69년) 건축가의 이상을 도시 공간에 불어넣던 때가 있었다”며 “우리 도시 공간의 숱한 토대를 만들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유령 같은 기공의 유산을 발굴했다”고 덧붙였다.

24일 개막한 제 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24일 개막한 제 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당시 기공에서는 한강연안개발ㆍ삼일고가ㆍ경부고속도로ㆍ포항제철 등 한국 도시공간의 틀을 만드는 굵직한 개발계획을 도맡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운상가, 구로박람회, 여의도 마스터 플랜, 오사카 박람회 한국관 등 기공의 네 개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당시 기공의 건축부에 있었던 건축가 김원(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은 “오사카 박람회 한국관의 경우 정부에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되새겨 거북선 형태로 만들거나, 전통미를 살려 경회루를 지으라고도 했지만 결국 버텨내며 모던한 디자인으로 완성했다”고 소회했다.

24일 개막한 제 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24일 개막한 제 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경.

전시장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전시를 위해 프로젝트의 실제 기록을 모아 둔 ‘부재하는 아카이브’와 기공의 프로젝트에 작가들의 상상력을 더한 설치작품 ‘도래하는 아카이브’로 분류했다. 공동큐레이터이자 작가로 참여한 서울대 최춘웅 교수(건축학과)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숱하게 계획을 바꾼 여의도 마스터 플랜을 모형으로 만들어 켜켜이 쌓고, 애초 건축가가 그린 이상대로 여의도가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만화로 그려냈다.

건축가 김성우(N.E.E.D.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주변 재개발로 고층 건물에 둘러싸이게 될 세운상가의 대응전략을 탐구하는 ‘급진적 변화의 도시’를 선보였다. 박정현 공동큐레이터는 “서울 마포석유비축기지처럼 최근 시민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공간들이 1960~70년대 산업 시대의 유산이 많듯이 앞으로 공공공간을 획득하기 위해 ‘스테이트 아방가르드 유령’에 대한 발굴과 재해석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베니스=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1980년 시작된 세계 최고 규모의 건축행사. 모태는 1895년 발족한 베니스 비엔날레(미술전)다. 미술전과 건축전이 격년제로 열린다. 올해 건축전은 5월 24일부터 11월 2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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