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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모토사이클 투어, 오키나와 첫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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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현종화의 모터사이클 이야기(8)

오키나와의 에메랄드빛 바다색은 마력이 있었다. [사진 현종화]

오키나와의 에메랄드빛 바다색은 마력이 있었다. [사진 현종화]

이번 오키나와 여행은 정말 농담처럼 시작됐다. 매주 수요일 밤 10시 인터넷 개인방송 중에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한 한국인이 놀러 오라는 것이 이번 여행의 시작이었다. 사실 내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많다.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남아공, 카자흐스탄, 일본 등등 세계각지에 사는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여행경비가 만만치 않고 모터사이클을 빌리는 문제도 막막하고 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 중에 오키나와의 시청자 중 박영식이라는 운전자가 오키나와는 저가항공 티켓이 비싸지 않고 모터사이클 렌트비용도 싸다고 놀러 오라는 말에 훅 마음이 동했다. 평소 “인생 뭐 있어? 죽으면 썩을 몸!”을 인생 철학으로 사는 나에게 이런 정보는 흥분요소였다.

인터넷 방송중 오키나와 사는 한국인이 여행 초청 

어느 순간 저렴한 오키나와 티켓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24만원에 오키나와 왕복 티켓을 예약했다. 일정은 6박 7일. 다짐했다. 오키나와 모터사이클 투어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오겠노라고!

오키나와 출발 당일 10시 20분 비행기인데 새벽 6시에 일어나 짐을 정리했다. 그렇게 많은 여행을 다녔는데 아직도 짐을 최적으로 꾸리는 것은 어렵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비행기 표를 받는 시간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공항에 빨리 갔길 망정이지 게으름 피웠으면 강아지처럼 뛰어다녀야 했을 거다.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출국이라 짐 보안검색이 살벌했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다. 오키나와는 인천에서 1500km 정도 남쪽에 있는 일본의 섬이다. 사실 지도를 살펴보기 전에는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잘 몰랐다.

대만보다 조금 더 북쪽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한국보다는 평균 15도 정도 기온이 높단다. 당시 한국은 동계올림픽 개최 직전이었고 최대한파로 신기록을 경신하는 중이었다.

저가 항공사라서 기내식은 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기내식을 주기는 했다. 비록 삼각김밥과 바나나지만 맛나게 먹었다. [사진 현종화]

저가 항공사라서 기내식은 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기내식을 주기는 했다. 비록 삼각김밥과 바나나지만 맛나게 먹었다. [사진 현종화]

2시간 30분 정도를 날아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오기로 한 박영식씨를 만나기 위해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나하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생각보다 춥다. 오키나와도 이례적인 한파란다. 한겨울에도 영상20도 이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여행을 가니 최저기온 7도 정도의 무시무시한 추위가 왔다.

인터넷으로만 만나던 영식씨를 드디어 만났다. 훤칠한 키의 영식씨가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준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영식씨의 자동차부터 눈에 들어온다. 전문 사진작가인 영식씨는 촬영 장비 이동이 편한 RV를 몰고 나타났다. 차에 타니 국내 차의 반대편에 있는 우측핸들부터 보인다. 일본은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좌측통행이라 핸들은 당연히 우측에 있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

일본 친구 박영식 사진작가. 여행 내내 많은 도움을 줬다. 모터사이클 운전자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줬다. [사진 현종화]

일본 친구 박영식 사진작가. 여행 내내 많은 도움을 줬다. 모터사이클 운전자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줬다. [사진 현종화]

나하공항에서 나하시로 가려면 해저터널로 연결된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나가야 한다. 250cc 이상 모터사이클만 진입할 수 있다. [사진 현종화]

나하공항에서 나하시로 가려면 해저터널로 연결된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나가야 한다. 250cc 이상 모터사이클만 진입할 수 있다. [사진 현종화]

숙소로 가는 길에 태평양을 횡단하는 대형 여객선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진 현종화]

숙소로 가는 길에 태평양을 횡단하는 대형 여객선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진 현종화]

나하공항에서 숙소인 비즈니스호텔로 가는 길에는 해저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영식씨는 해저터널을 유리로 만들었다면 물고기들이 다 보일 텐데 아쉽다고 말한다. 역시 프로 사진작가다운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영식씨의 환상을 깨는 말로 받았다. “해저터널을 유리로 만들었다가 그거 깨지면 다 몰살당할걸요?” 그리고 둘 다 키득거리며 웃었다.

인터넷 생방송 채팅창에서만 만났기 때문에 어색할 줄 알았지만 역시 모터사이클 운전자의 세계는 끈끈했다. 초면인 영식씨와 수다를 떨며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일본의 비즈니스호텔이다. 건물 외형이나 로비는 한국의 모텔 정도 수준이다. 방으로 들어가니 조금 놀랐다. 2인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침대에 가기 위해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나같이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 먹고 조심히 올라가야 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런 비즈니스호텔이 7000엔(우리 돈 약 6만8000원) 정도. 한국과 비교하면 좀 비싼 편이다.

이곳이 비즈니스호텔이다. 2인실이고는 하지만 상당히 비좁다. 광각렌즈로 찍었지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다. 이런 곳이 7000엔이라니. [사진 현종화]

이곳이 비즈니스호텔이다. 2인실이고는 하지만 상당히 비좁다. 광각렌즈로 찍었지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다. 이런 곳이 7000엔이라니. [사진 현종화]

낯선 곳을 홀로 기웃거리는 첫날의 설렘

영식씨는 일 때문에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나는 숙소에서 나와 근처 나하시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혼자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느낌이 드는 이런 방황을 좋아한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니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터사이클들이 눈에 띄었다. 30년 전 활약하던 혼다 마그나750(HONDA MAGNA750)도 깨끗한 상태로 길거리에 서있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거 관리 참 잘했네.”

말도 잘 안 통하는 이국땅에서 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설렘은 첫날뿐이다. 지나치게 적응력이 뛰어난 나의 능력(?)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기웃거림을 좋아한다. 마트도 들어가 보고 빠칭꼬에도 들어가 보고 근처 공원에도 어슬렁거리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댔다.

숙소 앞 나하시를 어슬렁거리다가 혼다 마그나 750을 만났다. 30년 세월에도 아직 건재한 모습이 반갑다.[사진 현종화]

숙소 앞 나하시를 어슬렁거리다가 혼다 마그나 750을 만났다. 30년 세월에도 아직 건재한 모습이 반갑다.[사진 현종화]

일본의 모터사이클 문화 중 가장 부러운 것은 모든 건물마다 모터사이클·자전거 주차장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는 토양과 기후가 달라서 그런지 공원에 서 있는 나무들이 아주 멋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무섭기도 한 형상이다. 한때 일본 애니메이션의 광팬이었던 시절에 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나무와 흡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는 모두 섬이 나오는데, 그 모티브가 된 섬이 바로 오키나와라고 영식씨가 얘기해줬다.

오키나와의 나무들은 대부분 이런 형상이다. 환상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밤에 보면 조금 무섭다. [사진 현종화]

오키나와의 나무들은 대부분 이런 형상이다. 환상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밤에 보면 조금 무섭다. [사진 현종화]

가성비 최고, 오키나와 초밥

나하시를 어슬렁거리며 탐험하는 사이 영식씨가 도착했다. 영식씨가 오키나와 방문기념으로 첫 번째 식사로 초밥을 사겠단다. “땡큐”를 외치며 초밥집으로 향했다.

오키나와는 섬이라서 그런지 초밥이 한국보다 싼 집도 많았다. 저렴하지만 맛은 아주 좋았다. 종류도 아주 많고 테이블마다 마련된 전자 주문기 같은 걸 손가락으로 찍으면 초밥을 만들어줬다. 신기한 시스템에 이것저것 많이도 먹었다. 초밥은 싼 것은 120엔, 비싼 것은 300엔 정도의 가격대였다. 영식씨와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먹었는데도 2100엔(우리 돈 약 2만500원)이 나왔다. 가성비가 최고였다.

영식시와 함께 간 초밥집. 저렴하고 맛도 있다. ’일단 한번 잡숴봐!“ [사진 현종화]

영식시와 함께 간 초밥집. 저렴하고 맛도 있다. ’일단 한번 잡숴봐!“ [사진 현종화]

숙소 주변 탐색을 마치니 저녁이 됐다. 오키나와에서의 첫날밤은 모터사이클과는 상관없는 관광이 돼버렸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바이크를 빌려 투어를 떠날 계획이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오키나와의 에메랄드빛 바다색은 예쁘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마력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해안가를 내일부터는 모터사이클로 달린다. 오키나와 모터사이클투어 2편에 공개하겠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현종화 모터사이클 저널리스트 hyunjonghwa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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