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타민] 검찰 소환 거물급 '언론 따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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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게이트'라 불리는 굵직한 사건 수사가 진행될 때면 서울 서초동 검찰청에는 고급 승용차들의 줄이 이어집니다. 정치인.고위공무원.회사 임원 등 쟁쟁한 인사들이 줄줄이 조사받기 위해 불려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과 론스타 사건 수사가 한창인 대검찰청에서 주요 인사들의 출두 풍속도가 달라졌습니다. 눈에 띄는 고급 승용차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거지요. 가끔 보이는 고급 승용차는 변호사의 차량뿐입니다. 공개소환되는 경우가 아니면 자기 차를 타거나 부하직원의 경호를 받아가며 출두하지는 않는답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합니다.

기자가 검찰 수사상황을 체크하는 방법 중 하나는 '차량 번호 맞춰보기' 입니다. 고급 승용차가 검찰청사에 나타나면 거물 인사가 소환되는 것으로 판단, 차량 번호를 적어 누구 소유인지 취재하기도 하지요. 정치인이나 기업 총수라면 검찰에 소환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사가 됩니다.

이 때문에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등장했지요. 얼마 전까지 차량 번호가 '허'로 시작되는 승용차가 인기였지요. 추적이 안 되는 렌터카를 이용한 것입니다. 지난해부터는 '허 번호판' 차량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검찰 수사를 받았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회사에서 '허'번호판을 사용하지 않는 업무용 리스 차량을 이용해 임직원을 모셔갔다"고 전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오가는 인사도 늘었지요. 대검의 한 직원은 "근처에 있는 호텔까지 고급차를 타고 왔다 그곳에서 택시로 갈아타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합니다. 검찰청 주변에 대기하면서 "기자들이 있을까봐 못 들어가겠다"고 우기다 결국 수사관 차량을 타고 청사 지하주차장을 통해 조사실로 들어간 인사도 있답니다.

최근에는 대검 민원실 앞 주차장에 9인승 승합차 한 대가 자주 눈에 띕니다. 차 근처에는 3~5명이 상주합니다.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한 그룹 소속 직원이라 하더군요. 매일 다수의 임직원이 소환되다 보니 아예 교대로 검찰청에 출근해 임직원이 불려올 때 챙겨주고 돌아가는 것을 돕는다는 거지요.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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