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성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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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세룡(1947~ ) '성냥'

감옥 속에는 죄인(罪人)들이 가득하다

머리통만 커다랗고

몸들이 형편없이 야위었다

세계를 불태우려고

기회를 엿보는 어릿광대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일생(一生)을

감옥에서 보낸다



성냥 보기가 힘들어졌다. 라이터가 대체했다. 담배 끊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급할 때 불 빌리기도 쉽지 않다. 성냥은 아날로그의 마지막 아이콘이다. 성냥처럼 시대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이 있다. 원기소, 풍금(이 있던 자리), 타자기(를 두드리던 희고 긴 손), 연필 깎는 칼, (안내양이 차 옆구리를 탕탕 치며 뛰어오르던) 시내버스, 무전여행, 닭곰탕, (갑자기 사라진) 피카소 파스, 레이션 박스, 하복 상의 왼쪽 주머니의 잉크 자국, 전당포, 영웅만년필, 이소룡, '가리방', 불온서적(문서)…. 그, 그 많던 성냥개비들은 누가 다 그었을까?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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