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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중풍 남편 10년 보살폈는데 … 가족이 돌보면 왜 차별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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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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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11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다. 두 달 중환자실 치료에, 1년 반 재활치료에 매달렸지만 허사였다. 1억8000만원을 썼다. 남편은 완전 와상환자가 돼 집으로 왔다. 경기도 광주시 이영춘(53)씨는 약 10년 집에서 남편(60)의 손·발과 머리가 됐다.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의 온몸을 주무르며 마비된 근육을 깨웠다. 밝은 내용의 드라마, 개그 프로그램을 틀어 뇌세포를 자극한다.

10년 집서 간병 이영춘씨 하소연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나. 남편은 간신히 걸어서 화장실에 간다. 채널을 기억하기도 한다. 더는 호전되지 않는다. 중간에 패혈증(전신 혈액에 세균이 감염) 쇼크로 병원에 실려 갔다. 담석 수술을 받았다. 혈당 조절이 안 돼 늘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

대개 하루 60분, 월 24만원 지급

이영춘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집에서 보살피고 있다. 이씨는 가족 요양보호사가 돼 남편을 돌보다 생활고 때문에 포기하고 취직했다. 대신 다른 요양보호사가 하루 3시간 돌본다. 가족요양에서 일반요양으로 바뀌면서 건보공단 지출이 월 36만원 늘었다. [최승식 기자]

이영춘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집에서 보살피고 있다. 이씨는 가족 요양보호사가 돼 남편을 돌보다 생활고 때문에 포기하고 취직했다. 대신 다른 요양보호사가 하루 3시간 돌본다. 가족요양에서 일반요양으로 바뀌면서 건보공단 지출이 월 36만원 늘었다. [최승식 기자]

이씨는 2010년 1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가족 요양보호사’가 됐다.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가족 요양보호사의 돌봄 노동을 하루 1시간, 월 20일 인정해 비용을 지불한다. 이씨 남편은 치매가 있어서 1시간 반, 한 달을 인정받는다. 월 50만원 남짓 들어온다. 이씨는 이걸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가족 요양’을 포기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지난해 3월부터 재가복지센터 관리 일을 한다. 다른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와서 세 시간 남편 수발을 든다. 이씨는 CCTV를 달고 휴대폰으로 연결해 남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이씨에게 물었다.

왜 가족 요양을 포기했나.
“가족 요양보호사에게 나오는 돈만으로 생활할 수 없다. 집세를 겨우 충당할 정도다.”
요양원에 보내면 되지 않나.
“주변에서 ‘왜 바보처럼 사느냐’고 말할 때 가슴 아프다. 그리하면 내가 못 살 것 같다. 같이 밥 먹는 게 너무 행복하다. 대변을 시원하게 봐도 이쁘다. 가족 관심에 따라 병이 달라진다. 항상 남편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당신 없이 못 산다.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남편은 약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좋아졌다. 항상 안아준다.”
어떻게 제도를 바꿔야 하나.
“가족이 돌보게 유도해야 한다. 일반 요양보호사처럼 하루 3~4시간, 26~27일 인정해야 한다.”

가족 요양보호사 인정 시간(하루 1시간, 월 20일)의 수가는 41만5800원이다. 일반 요양보호사(3등급 약 119만원, 1등급 약 140만원)나 요양원 입소(약 150만원)에 비해 훨씬 적다. 41만5800원에서 환자 부담을 제하고 35만3000원이 재가센터로 간다. 가족 요양보호사는 반드시 재가센터에 등록하게 돼 있다. 센터 관리비를 제하면 평균 24만원을 가족 요양보호사가 받는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을 시행할 때 가족 요양 인정시간은 ‘하루 1시간 반, 31일’이었다. 2011년 1시간, 20일로 축소했다. 또 월 160시간 이상 다른 일을 하면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돌봐야지, 퇴근 후에 돌보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규정을 강화한 이유는 집에서 부모를 돌보던 자녀들이 대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기 때문이다. 2009년 가족 요양보호사가 2만8439명에서 2011년 4만5299명으로 급증했다. 지금도 꾸준히 늘어 가정방문 요양보호사의 29%에 달한다.

고령화시대 가족돌봄 유도해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가족 요양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경기도 용인시 가족 요양보호사의 자녀는 “24시간 환자를 돌보는데 왜 1시간만 인정하느냐. 일반 직장처럼 8시간은 아니어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김근홍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노년학회 회장)는 “요양원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집이, 일반 요양보호사보다 가족 요양보호사가 노인에게 좋다”며 “보험료를 더 내고 감시장치 만들어서 인정 시간을 늘려 가족 돌봄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김경옥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정보협회장은 “고령화 시대에 국가가 100% 돌볼 수 없으니 가족 돌봄의 가치를 인정해서 한 달(지금은 20일)로 늘려야 한다. 그래야 요양원에 보내지 않게 되고 재정 절감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돈만 받고 방치하거나 서비스 질을 체크할 방도가 없고, 부모 돌봄 당연한 건데 왜 돈을 주느냐”고 반박한다. 최종희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제도과장은 “가족 돌봄에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있어서 연말까지 제도 개선안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가족 요양을 인정하지 않는다. 독일은 요양보호사 파견 서비스를 받든 지 현금(파견비용의 50%)을 받든 지 선택할 수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 요양도 사회적 돌봄의 일환이다. 가족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의미에서 가족 요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돌보는 부모 수당도 논란

최근에는 장애인 활동 지원에도 ‘가족 돌봄’ 논란이 일고 있다. 활동보조사가 파견돼 장애인을 도와주는 서비스다. 중증장애인의 부모가 활동보조사 일을 할 경우 가족 요양보호사처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박태성 한국장애인부모회 수석부회장은 “와상 상태의 뇌병변 장애인이나 1급 발달장애인은 활동보조사를 구하기 쉽지 않다. 기저귀 갈아야 하고 의사소통이 잘 안 돼서다. 부모가 케어할 수밖에 없어 이런 경우에만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도 여기에 동조한다.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자립을 지원하는 게 목적인데 가족 활동 지원을 인정하면 취지에 역행하고, 돌봄 책임을 다시 가족에게 떠넘기게 된다”고 반대한다. 이와 관련, 조남권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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