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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2000년 떠돌던 유대민족, 나라 세운 지 70년 팔레스타인엔 불행의 역사 7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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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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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와 통곡이 엇갈린 예루살렘

1947년 이스라엘의 남쪽 끝인 아카바만 연한 항구도시인 에일라트를 점령한 시오니스트 무장대원들이 잉크로 그린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이스라엘 독립을 상징하는 사진이다. [중앙포토]

1947년 이스라엘의 남쪽 끝인 아카바만 연한 항구도시인 에일라트를 점령한 시오니스트 무장대원들이 잉크로 그린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이스라엘 독립을 상징하는 사진이다. [중앙포토]

이스라엘이 건국 70주년을 맞은 지난 14일은 팔레스타인엔 비극의 하루였다. 이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이스라엘 측이 발포해 팔레스타인 시위대 58명 이상이 죽고 2700여 명이 다쳤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전했다.

건국 자체가 기적인 나라, 이스라엘 #민주주의 정치, 번영 경제 선진국 #방울토마토·USB 발명 기술부국 #이집트·요르단과 평화협정·국교 #팔레스타인 박해 국제 비난 자초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년, 48~53년 재임)은 “이스라엘에선 아무리 현실주의자라도 기적을 믿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건국에 대해 한 말이다.  2000년 전에 로마에 나라를 잃고 대부분 고향에서 쫓겨난 유대민족이 다시 돌아와 그 땅에 나라를 세웠던 이스라엘이 지난 14일로 70세 생일을 맞았다. 건국 자체로는 물론, 아랍세계에 둘러싸인 채 생존을 유지하고 중동에선 드문 서구식 민주주의를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건국기념일은 이스라엘의 국경일인데 유대 고유의 헤브루 달력(여덟째 달인 이야르의 제5일)으로 쇠고 있어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론 매년 날짜가 다르다. 올해의 이야르 5일은 그레고리우스력으론 지난 4월 19일이었다.

고향을 잃고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기독교 사회로부터 ‘예수를 살해한 민족’이라며 호된 차별과 박해를 당했다. 예수와 초기 제자들도 유대인이었는데도 말이다. 영국과 스페인 등에서는 아예 집단 추방을 당했다. 심지어 20세기에는 홀로코스트라는 시련을 당해 멸종 직전까지 갔다. 나라 없는 유대인은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듯 문학작품에서도 유대인은 사악하고 탐욕적인 종족으로 표현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유대민족은 유대교라는 신앙, 모계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정체성 교육, 공동체 사회 등을 통해 명맥을 유지했다. 중동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주로 의사·건축가·환전상 등을 맡으면서 기독교와 이슬람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정체성을 지켰다.

유대국가 이스라엘 건국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불굴의 행진’이었다. 19세기 유럽 등에서 시오니즘 운동이 싹트면서 유대 국가를 세우자는 희망·꿈·이상이 무르익어갔다. 로스차일드 가문 등 영향력 있는 유대인 금융인·기업인들은 강대국을 상대로 로비를 펼쳤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포어가 당시 오스만튀르크 제국 영토였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운다는 ‘밸포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이 1차대전 중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전후 위임통치를 하는 동안 유대인 이주가 진행됐다. 이주 유대인들은 영국과 아랍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했다. 이스라엘인들은 2000년의 디아스포라(이산)를 마감하고 48년 조상의 땅에 나라를 세웠다. 나라를 세운 이들은 고대에 조상들이 쓰던 헤브루어를 부활해 국어로 사용하고, 달력도 서구의 그레고리우스력 대신 헤브루 달력을 쓴다. 이스라엘 건국은 고대에 사라진 민족과 국가의 부활이나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천국 … 세계 20위 부자나라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

이스라엘 경제는 지난 70년간 눈부시게 발전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건국 초기 공동 생산·분배·생활을 지향하는 집단농장 키부츠로 농업을 육성했으나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해 하이테크 산업도 키워왔다. 이스라엘이 개발해 전 세계가 사용하는 세계 최초의 상품도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방울토마토와 USB 플래시 메모리는 이스라엘에서 처음 나왔다. IBM PC에 사용된 인텔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 레이저 키보드, 바이러스와 암 억제 효과가 있는 인터페론 단백질, 인터넷 전화 바이버, 전자사전 및 통역도구인 바빌론 등도 이스라엘의 발명품이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은 국제통화기금(IMF) 명목금액 기준 2018년 전망치로 3737억 달러로 세계 33위다. 1인당 GDP는 4만2115달러로 세계 20위의 부자나라다.

GDP가 현재의 경제 수준을 말해준다면 5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창업기업)은 미래의 희망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며 이미 세계적인 창업국가 반열에 올라섰다. 매년 문을 여는 스타트업이 1500개에 이른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사이버보안·바이오·드론·과학영농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독자 기술을 확보했다.

건국하는 날부터 생존을 위협받은 나라

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15일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인근의 유대인 정착지에서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15일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인근의 유대인 정착지에서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은 건국하는 날부터 생존을 위협받았다. 47년 유엔 결의로 요르단 강과 지중해 사이의 지역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분리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이집트·시리아·요르단 등 주변 아랍 국가들은 48년 전쟁으로 응답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 또는 제1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총을 들고 필사적으로 대항한 결과 결국 독립을 얻어냈다.

이스라엘은 56년 영국·프랑스 주도의 수에즈동란(제2차 중동전쟁)을 거쳐 67년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국가들과 대적했다. 국방장관 모세 다얀 장군이 이끈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공군·기갑 작전을 바탕으로 압승을 거뒀다. 6일간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등 팔레스타인 몫의 땅은 물론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군사작전 능력과 국토방위 의지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73년 아랍의 보복 기습공격인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6일전쟁의 성과에 취해 아랍권을 얕잡아봤던 이스라엘은 기습을 당했다. 밀리던 이스라엘군은 아리엘 샤론 장군이 기갑부대를 이끌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수도 카이로 방면으로 역습에 나서면서 간신히 휴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전쟁사는 전 세계에 국방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소중한 교훈으로 활용된다.

‘힘으로는 평화도 독립도 지킬 수 없다’ 교훈

이스라엘의 명암 70년

이스라엘의 명암 70년

욤 키푸르 전쟁은 이스라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 됐다. 군사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군사력만으론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랍도 무력으로 이스라엘을 굴복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79년 3월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 대가로 점령지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 품안으로 되돌아갔다. 78년 노벨평화상은 이스라엘의 메나햄 베긴 총리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94년 9월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2국가공존’을 골자로 한 오슬로합의를 이뤘다. 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에 잠입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학살한 ‘철천지원수’와 평화를 위해 대화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됐고 이는 2013년 정부로 전환했다. 이스라엘은 94년 이웃 아랍국가 요르단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츠하크 라빈(1922~95년, 재임 92~95년)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1929~2004, 재임 1969~2004) PLO 의장은 오슬로 합의로, 시몬 페레스(1923~2016년, 총리 재임 2007~2014년) 당시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요르단 국교정상화로 각각 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의 지난 70년 역사는 국민을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힘만으론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이스라엘의 그늘, 팔레스타인 박해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는 여전히 불편한 관계다. 이스라엘의 그늘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를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정부가 국제적으로 승인을 더 많이 받고 비회원국 옵서버 자격으로 유엔에서 활동하는 것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무장세력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거부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지난해 12월 6일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하게 했다. 성전산이 포함된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관할지역이었지 이스라엘의 영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의회는 67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선언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를 임시 행정수도로 삼고 있는 팔레스타인 정부도 공식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에도 성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이 같은 선언에 중동 세계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미국은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로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맞는 14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기어이 옮겼다. 이는 앞으로 중동에서 새로운 문명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미국은 과거 유엔이 정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경계선인 그린 라인 위에 요새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대사관을 지었다고 일본 NHK방송이 전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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