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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뼈 갈아 지혈제로…남도 어르신들의 바다생물 활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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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갑오징어.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참갑오징어.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머리가 깨지고 상처가 났다, 그러면 오징어 뼈 안 있습니까. 오래된 거를 갈아서 바르고 그랬어요. - 전남 보길도 주민 고동현(70) 씨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이 남도 주민들과 면담을 통해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전해져 온 2600여 가지의 바다 생물 활용법을 발굴했다.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은 생물자원과 전통지식의 보호·보전 및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역에서 구전 전통지식을 조사했다고 15일 밝혔다. 연구진은 전라남도 신안·진도·완도군 105개 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 300여 명(평균연령 80.9세)을 만났고, 이를 통해 생물자원 386종의 전통지식 2600여 건을 발굴했다.

참갑오징어 뼈(갑).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참갑오징어 뼈(갑).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대표적인 게 참갑오징어다. 남도 주민들은 상처가 나면 참갑오징어의 뼈(갑)를 갈아 지혈제로 사용했다.
오경희 국립생물자원관 유용자원활용과장은 “참갑오징어 뼈에 있는 탄산칼슘 성분이 지혈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기 중 산소와 만나면 열이 발생하는 탄산칼슘은 혈액의 수분을 증발시켜 혈액을 빠르게 굳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빨랫비누 대신 해조류 곰피 사용

곰피.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곰피.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미역과 비슷한 해조류인 곰피는 빨랫비누를 대신하는 용도로 활용됐다.
곰피는 계면활성제 역할을 하는 당이나 지질과 같은 천연 성분이 많아 비누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상괭이 기름으로 벼멸구 퇴치 

상괭이.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상괭이.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신안군 도초·비금면, 진도군 도조·임회면, 완도군 보길·소안·청산면 등 해안지역에서는 벼멸구를 퇴치할 때 고래의 한 종인 상괭이의 기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에 사는 권광래(80) 씨는 “그 전에는 농약이 없으니까 상괭이 기름을 뿌려서 벼멸구를 잡는 데 썼다”고 말했다. 상괭이의 기름에는 살충 성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역국에 소고기 대신 조피볼락 넣어   

조피볼락.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조피볼락.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남도인들은 산후조리를 할 때 즐겨 먹던 미역국에 소고기 대신 생선인 조피볼락을 넣었다.
양볼락과 어류인 조피볼락에는 칼슘과 단백질 성분이 소고기보다 많이 함유돼 있으며, 특히 칼슘은 소고기보다 5배 정도 많다.

순비기나무로 피부질환 치료  

순비기나무.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순비기나무.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전남 완도군과 진도군에서는 바닷가 모래땅에 자라는 순비기나무의 줄기와 잎을 삶아 그 물로 두드러기 같은 피부질환을 치료했다는 지식도 발견됐다.

마편초과에 속하는 순비기나무는 폴리페놀, 타우린과 같은 항산화·항균 성분이 풍부해 피부질환에 이용돼 온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조선 선조 때의 의학서인 ‘의림촬요(醫林撮要)’에도 순비기나무 열매인 만형자(蔓荊子)를 탈모 치료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번에 발굴한 전통지식 2600여 건 중에 80종의 동·식물과 관련된 생물자원 이용지식 174건을 수록한 자료집 ‘남도인의 삶에 깃든 생물이야기’를 15일에 발간했다. 국립생물자원관 누리집 생물다양성 이북(E-book) 코너에서도 볼 수 있다.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부장은 “우리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생물자원과 이와 관련한 전통지식이 산업적으로도 활용 가능한 귀중한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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