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중국판 유대인, 원조우 상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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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원조우 상인."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저장(浙江)성 원조우(溫州)기업가들이 국가 지도부 인사들의 해외순방을 가장 많이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유력지 동방조보(東方早報)는 12일 "중국무역촉진위원회(무역협회) 집계 결과, 상하이.쑤저우(蘇州)성.저장성 기업가들이 해외순방의 단골 손님이었으며 이 가운데 저장의 원조우 기업가들이 가장 많은 초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5일 남태평양 피지에서 열린 '제1회 중국.태평양제도 경제발전협력포럼'에 참석한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 가까이엔 황징쥔(黃靜俊) 완펑부동산개발 대표 등 원조우 출신 기업가 세 명이 포함됐다. 또 111개 기업이 참가하고 있는 우이(吳儀) 국무원 부총리의 미국 경제사절단에는 12개 원조우 기업이 들어있다. 지난해 9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캐나다 방문 땐 원조우 출신 기업가 14명이 주석기(機)에 올라탔다. 당시 胡주석을 수행한 기업인은 모두 80명. 이중 저장성 출신이 20명이었다. 또 같은 해 12월 溫총리의 유럽.아시아 5개국 순방 때도 13명의 원조우 기업인들이 총리 수행단에 이름을 올렸다.

원조우 상인들의 고공행진은 2003년 溫총리의 아프리카 순방 때부터 시작됐다. 국영기업의 대표에게만 허용되던 수행단 참가 자격이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되자 원조우 출신이 네 자리를 꿰찼다. 민영기업 배정분이 20석도 안되던 때였다. 처음으로 공개된 수행단의 민간 '지분'을 확보한 원조우 상인들은 폭넓은 관계망을 바탕으로 줄기차게 수행단 공략에 공을 들였다.

무역촉진위에 따르면 기업인 수행단은 공개 신청자와 각 지역의 촉진위 지부에서 보내온 초청 대상을 함께 추려 결정한다.

촉진위 관계자는 "방문국과 교역관계가 있어야 하고 업체의 사업전망 및 실적도 고려한다. 또 최고경영자(CEO)의 영어 구사 능력도 매우 중시한다"고 밝혔다. 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기업은 물밑에서 로비 공세를 펴기도 한다.

원조우 상인들은 왜 '수행단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일까. 재계 소식통들은 수행단에 포함되면 ^국가 지도급 인사의 측근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고 ^정부와 친밀도가 높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해외기업에 심어주는 한편 ^정부의 배려 아래 투자 유치 및 판로 개척에 나설 수 있는 등 사업상 이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이런 매력 때문에 민간에 개방한지 3년만에 수행단 수에서 민영기업이 국영기업을 크게 앞질렀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9월 胡주석의 캐나다 순방을 수행했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관성(冠盛)의 주자루(周家儒)대표. 그는 "만찬 테이블에 앉은 캐나다측 바이어 5명이 수입 파트너를 잡기 위해 내 눈 앞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봤다"며 "수행단에 포함된다는 것은 높은 신뢰도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저장성중소기업국 관계자는 "원조우 상인들을 비롯한 저장성 출신 기업가들의 '저우추취(走出去.가자!해외로!)' 전통이 글로벌 비즈니스 시장 확대라는 국가 전략과 맞아떨어져 뚜렷한 약진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조우 상인=저장성 남부에 위치한 원조우는 역대 왕조의 수도였던 낙양.서안.베이징 등 중앙 정부에서 멀리 떨어져 역사무대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면 '물고기와 쌀의 고향'(魚米之鄕)으로 불리는 저장성의 자연지리적 이점을 살려 상업 교역에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싼 가격에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과 사업에 뛰어들면 기필코 성공하는 뚝심으로 대표되는 상업 전통은 그들을 장사꾼의 대명사로 불리게 했다. 중국 전역으로 퍼진 원조우 상인들은 가는 곳마다 집성촌을 이뤄 '원조우 거리'(溫州街)로 특화됐다. 중국에선 수년전 이들의 금전철학과 경제관념을 집중 조명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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