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바지 입은 꼰대’ 판치는 후진적 기업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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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비효율적인 회의와 불필요한 보고 등 혁신의 발목을 잡는 후진적인 기업문화가 여전하다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진단이 나왔다. 이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들은 회식을 제외한 야근과 회의·보고 등 대부분의 항목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많은 기업이 2년 전 같은 조사에서 낙제점을 받은 기업문화를 개선하겠다며 여러 제도를 속속 도입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다. 현장에서는 개선은커녕 오히려 근본적인 변화 없이 대부분 이벤트성 캠페인에 그쳐 조직 내에서 냉소를 자아내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기업들이 아프게 돌아봐야 할 지적이다.

일례로 한 기업 대리는 “소통하겠다며 복장을 자율화하고 직급 호칭을 없애니 (부하 직원) 의견은 잘 듣지 않는 ‘청바지 입은 꼰대’만 양산했다”고 불통의 리더십에 대해 아쉬워했다. 또 다른 대기업 차장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후 회사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내세워 매일 퇴근 시간에 맞춰 강제 소등하지만 현실은 불 꺼진 사무실에서 스탠드 켜고 일하는 것”이라며 여전히 바뀌지 않은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문제 삼았다.

상의는 2016년 조사 당시 한국 기업의 만성적인 야근을 생산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 지적한 바 있다.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동시에 근로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야근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 업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몇몇 기업이 이를 받아들여 ‘1장짜리 보고서 캠페인’ 등을 벌였으나 정작 현장에서는 첨부 자료만 30~40장을 더 붙이는 ‘무늬만 혁신’으로 변질돼 조직 피로도만 높였다는 게 이번 조사로 드러났다.

기업들이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에 대응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보여주기식 대증적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진단을 계기로 무엇이 문제인지 보다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