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소리없이…』한사건을 다각도로 서술|『흔들리는 바람』|민주화요구의 갈등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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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최근의 소설을 읽으면서 분명하게 주목할 수 있는 현상은 작년 6월의 민주화 운동이 소설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그 이전에도 간간히 혹은 조심스럽게 소설의 테마로 다루어졌던「80년의 5월」이나 그후의 민주화 운동이 금년에 들어서는 마치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소설의 가장 중요한 테마로 나타나고 있다.
문학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하기를 꿈꾸는 것임을 상기한 때, 정치적인 이유로 금기시되었던 테마가 민주화와 자유화의 물결을 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따라서 그것은 문학의 역사적 측면이나 사회적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작가적 용기나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현실 인식의 깊이와 그 문학적 표현이 획득한 형상화다. 개인들의 특수한 체험을 통해 이땅에서의 삶의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의미를 질문할수 있게 만드는 작품들이 그와 같은 형상화를 이룩한 작품이다. 증오와 주장이 억제된 채 집요한 작가적 추적이 이루어진 작품가운데서 최윤의「저기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문학과 사회』여름호)는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야할 작품이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점의 이동을 통해 서술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현실의 총체적 인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설 본래의 목표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독자로 하여금 그것이 왜 비극이고 충격인지, 또「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그것은 개인이 겪는 삶의 고통과 비극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일부로 인식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재미로 읽는 것이 아니라 고통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최상규의「바람부는 양지」(『문학이상』7월호)와 강병철의「흔들리는 바람」(『삶의 문학』8집)은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내면에 있는 근본적인 갈등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두 작품이 모두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는 두 세대간의 갈등의 양상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도식적이 아닌 방식을 택하고있다.
김치수<이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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