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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⑯동료→적→또 동료, 김희진-박정아

중앙일보

입력

대표팀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는 박정아(왼쪽)와 김희진.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대표팀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는 박정아(왼쪽)와 김희진.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여자 배구 대표팀이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출전을 위해 13일 중국으로 떠났다. 이번 대회 키플레이어는 김희진(27·IBK기업은행)과 박정아(25·도로공사)다. 중고참급인 두 선수가 경기력은 물론 코트 안팎에서도 팀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희진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미들블로커와 아포짓을 오갔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선 포지션이 고정될 전망이다. 김희진은 "일단은 라이트 훈련에 비중을 두고 있다. (다른 라이트 선수들이 없기 때문에) 차해원 감독님이 항상 다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차해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대표팀은 빠른 플레이를 하는 쪽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김희진은 "당장보다는 2년 뒤 올림픽에 포커스를 맞춰 준비하는 느낌이 난다. f나중에는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웃사이드 히터 박정아의 표정은 더 밝았다. 박정아는 "리시브를 할 때 밀어주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아울러 공격을 할 때도 낮게 때리는 데 포커스를 두고 있다"고 했다. 평소에도 빠른 배구를 하고 싶어했던 박정아는 "세터와 호흡을 위해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재미있게 준비를 했다. 세터들이 잘 맞춰주고 있다"고 했다.

2020 도쿄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뭉친 박정아(왼쪽)와 김희진.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2020 도쿄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뭉친 박정아(왼쪽)와 김희진.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해에 이어 대표팀은 이번에도 강행군을 치러야 한다. 기존 월드리그(남자)와 그랑프리(여자)를 대체해 신설된 VNL가 시작이다. 이 대회에는 세계랭킹 포인트가 걸려있어 놓칠 수 없다. 도쿄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선 세계랭킹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8월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그리고 9월엔 AVC컵과 세계선수권이 열린다. 차해원 감독은 김연경(30) 등 베테랑 선수들은 체력 안배를 위해 중요도가 낮은 경기에선 휴식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박은진, 나현수 등 10대 선수들을 대표팀에 발탁해 경험을 쌓게 하기로 했다. 김희진은 "앞으로 시합이 계속 있어서 마음을 먹고 대표팀에 왔다. 거의 V리그 시즌만큼 치를 것 같다"고 했다.

김희진은 지난해 대표팀에서 팔꿈치 부상을 입고도 묵묵히 경기를 뛰었다.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진통제를 맞고 코트에 섰다. 아픔을 참은 건 2년 뒤 도쿄 올림픽에서 못 다이룬 꿈을 이루고 싶어서다. 김희진은 2012 런던올림픽(4강)과 2016 리우올림픽(8강)에 출전했지만 아쉽게 메달은 따내지 못했다. 김희진은 "런던 때는 정말 메달을 눈 앞에서 놓쳤다. 도쿄에서의 목표는 메달이다. '확실하게 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박정아에게 '대표팀'이란 아픈 기억이다. 리우올림픽 예선에선 맹활약하며 본선행을 견인했지만 정작 본선에서 부진했다. 평소 약점이었던 서브 리시브에서 부진하자 비판이 박정아에게 쏟아졌다. 도를 넘어선 악플에 개인 소셜미디어를 폐쇄하기도 했다. 박정아는 "그런 큰 대회가 처음이라 부담이 많았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겠다"고 했다. 괴로움은 오히려 박정아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대표팀 관계자는 '박정아가 리시브를 더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정아는 미소를 지으며 "감독님이 '금메달을 생각하면 최소한 은메달, 동메달을 딸 수 있다고 하셨다. 오고 싶어도 못 오는 게 대표팀이다.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IBK기업은행 시절 김희진(왼쪽)과 박정아. [뉴스1]

IBK기업은행 시절 김희진(왼쪽)과 박정아. [뉴스1]

사실 두 선수는 지난해까지 '동지'였다. IBK기업은행 창단 멤버로 5년 연속 챔프전 진출을 이끌며 3번이나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지난해 둘은 '적'이 됐다. 나란히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으나 김희진은 남고, 박정아는 도로공사로 떠났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팀은 챔프전에서 만났고, 박정아의 도로공사가 우승을 차지했다. 김희진은 "상대 팀으로 맞서보니 막기 힘들었다. 같은 팀일 땐 잘 못 느꼈는데 상대편이 되니 무서웠다"고 했다. 박정아는 "상대팀에서 맞붙는 건 처음이라 어렵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희진 언니랑 로테이션상 자주 맞붙지 않아 다행이었다. 희진 언니를 앞에 두고 공격하는 동료 문정원을 보면서 '우와'란 탄성이 나왔다"고 했다.

챔프전을 앞두고 두 선수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김희진은 "이겨야 할 상대"라고 했고, 박정아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고 했다. 박정아는 "워낙 자주 물어보셔서 그렇게 대답했다. 똑같은 질문을 자주 받으니까 '희진 언니도 곤란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희진도 "마치 연락을 안 하는 사이처럼 보시더라. 2011년 입단 동기 단체방이 있어서 연락을 주고 받는다. 절대로 사이가 나쁜게 아니다"고 웃으며 해명했다.

진천=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2020년 1월 1일만 기다리는 박정아?

박정아는 2020년 1월1일이 되면 "반말을 하겠다"고 웃었다.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박정아는 2020년 1월1일이 되면 "반말을 하겠다"고 웃었다.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1991년생 김희진과 1993년생 박정아는 두 살 차이지만 프로 입단 동기다. 김희진은 학창 시절 유급을 했고, 박정아는 1년 빨리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승주, 채선아, 문정원 등 92년생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하지만 말을 할 땐 꼬박꼬박 '희진 언니'라고 대우를 한다. 하지만 '희진 언니'의 유효기간은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김희진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되면 '언니'를 떼고 반말을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박정아는 "1월1일부터 바로 할 예정이다. 같이 늙어가고 즐거운 마당 아니냐"고 웃었다. 김희진은 "그런 애들이 8명 더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터뷰를 잘 하기로 소문난 둘이지만 괴로웠던 시간도 있었다. '서로에 대한 덕담을 해달라'는 질문이었다. 눈치 빠른 김희진은 '어려운 질문'이란 말을 꺼내자마자 "서로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는 거죠?"라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민망하다"고 머리를 긁으면서도 "정아는 (공격도 하고 리시브도 해야하는)어려운 포지션을 맡고 있다. 스트레스도 받고 아픈 곳도 있겠지만 2년 뒤 반말을 할 때는 엄청난 선수가 되어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정아는 "지금도 편하지만 좀 더 편한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어깨를 툭툭 쳐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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