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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상 지켜보는 北···그 둘을 동시 상대하는 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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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2일 미국의 이란핵협정(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 선언과 다음달 12일로 예고된 북ㆍ미 정상회담 개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개의 핵협상(북한·이란)을 동시에 굴리게 됐다. 두 협상이 상호작용하다보면 서로의 비핵화 기준점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트럼프식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11일(현지시간) VOA와의 인터뷰에서 “(JCPOA 탈퇴로 인해) 북한과의 합의 가능성은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북한은 스스로 ‘우리는 미국과 이란만큼 좋은 거래를 하지는 못하겠다, 미국 조건에 훨씬 더 맞춰야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JCPOA에서 문제삼은 지점들을 살펴보면 보면 북핵 협상의 기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중앙포토]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중앙포토]

일몰조항=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이란 핵합의가 시한부라는 점이다. 원심분리기는 10년, 고농축 우라늄과 무기급 플루토늄은 15년이 지나면 규제가 풀린다. 이란의 의무 이행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철저한 검증을 전제로, 관련 제재도 순차적으로 해제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JCPOA 채택 후 8년이 지나면(2023년) 미국은 비확산 관련 제재를 해제하고, 채택 후 10년이 지난 2025년에는 유엔 결의 2231호와 유럽연합(EU)의 잔여 제재가 완전 종료된다”고 설명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이란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주장이다. 북한 입장에선 평화적 핵 보유를 위한 일몰조항에 큰 기대를 갖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사찰 방식=JCPOA에서는 이란 내 모든 핵시설과 핵 활동에 대한 포괄적인 사찰 합의를 도출해냈다. 기존 NPT 가입국은 전면전 안전조치 협정을 맺고 핵물질과 저장 시설을 IAEA가 모니터링할 수 있게 했다. 추가의정서(AP)를 통해선 핵물질이 없는 관련 연구시설 등에 대한 접근도 가능한데 IAEA가 의심하는 시설에서의 시료 채집 등의 권한을 주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핵 합의에서는 이란이 원치 않아도 IAEA가 의심을 해소할 수 있는 절차를 24일 정도 내에 (이란이) 구현해야 하고, 이마저도 안되면 안보리에서 논의하게 했다”며 “미국은 이러한 절차조차도 불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여러차례 핵합의를 파기한 북한에 대해 고강도의 사찰을 요구할 게 분명하다.

‘홀리 디펜스’ 박물관 정원에 전시된 이란제 미사일. 왼쪽부터 위성발사체 시모르그(사피르)2A, 시모르그1. 그 옆은 탄도미사일 세즈질2, 가드르1, 샤하브 3B, 샤하브2. 시모르그 2A는 북한의 은하3호와 비슷하다.[중앙포토]

‘홀리 디펜스’ 박물관 정원에 전시된 이란제 미사일. 왼쪽부터 위성발사체 시모르그(사피르)2A, 시모르그1. 그 옆은 탄도미사일 세즈질2, 가드르1, 샤하브 3B, 샤하브2. 시모르그 2A는 북한의 은하3호와 비슷하다.[중앙포토]

탄도미사일 미포함=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유엔 안보리 제재에서는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탄도미사일’ 개발을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란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 했을 때 이게 핵무기 탑재용인지 논란이 분분했다. 미국은 이란의 중ㆍ단거리 미사일이 예멘 등 중동 분쟁지역에 여전히 수출되고 있고, 일부는 핵탄두 장착용으로 개조가 가능하다고 본다. 트럼프 정부가 핵 협상에서 공격능력을 크게 낮추는 것 뿐 아니라 불량국가들을 염두에 둔 비확산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는 탄도미사일을 활용한 모든 시험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미 본토를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만이 아니라  중ㆍ단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폐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두 개의 핵협상을 동시에 벌이는 건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란 정부는 11일 산업적 수준의 우라늄 농축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 본부 등을 잇달아 방문하며 외교전도 본격화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핵활동을 재개하면 1년 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이란의 대미 반격을 지켜보면서 북·미 협상을 지연시키거나, 이란의 핵개발 움직임을 봐가며 북한도 핵개발 재개를 준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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