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진 … 한국 미술시장에 보여 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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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사진작가 한정식씨의 작품을 설명하는 ‘트렁크 갤러리’ 대표 박영숙씨.

"처음 발상은 늙기를 더디게 하는 비법 연구소이자 놀이 공간이었어요. 우리 나이 되면 놀 터가 없잖아요. 한국형 파티문화도 만들고 신나게 공부도 할 생각이었죠. 팔자에 일이 떨어지질 않나봐요. 덜컥 사진전문화랑을 열게 됐으니 일하면서 놀 수밖에…."

서울 남산 소월길에 문을 연 '포토 에이전시(Photo Agency) 트렁크 갤러리' 대표 박영숙(65)씨는 툭툭 터지는 봄꽃보다 더 싱그러웠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힘과 기가 '트렁크'란 이름에 걸맞다. '트렁크 갤러리'는 기존 사진 전문 화랑과 다르다. 수납장처럼 생긴 공간에 다양한 사진 작가의 작품을 듬뿍 쌓아놓고 관람객이 한 점 한 점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고를 수 있게 꾸몄다.

"차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 수리공장으로 쓰였던 이 허름한 창고를 발견했어요. 첫눈에 '이거다' 싶었죠. 트렁크가 뜻이 여러 가지잖아요. 나무 밑동처럼 한국 사진계의 주춧돌이 될 수도 있고, 말 그대로 우리 사진가의 사진을 소장가에게 들고다니듯 소개하는 가방이 될 수도 있고, 고정되어 있지 않은 간이역 같은 느낌도 주고."

'여성미술연구회' '여성문화예술기획'을 거쳐 '한국여성사진가협회'를 이끌어온 그는 '자, 또 행동개시다'를 외치는 코끼리 같다. 코끼리의 큰 코도 영어로 '트렁크'다.'페미니스트 사진작가'로 여성의 정체성을 제대로 표현하려 노력해온 그답게 "사진이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한국 미술 시장에 '이것이 사진이다'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런 박씨의 열성에 뜻을 같이한 사진작가들이 줄을 섰다. 주명덕.황규태.홍순태.한정식.이완교.류기성.이상현.구본창.김중만.정동석.오형근.김영수.김대수.정주하.이갑철.박홍천씨는 앞으로 '트렁크 갤러리'가 매월 둘째 목요일 오후 6시에 여는 작가와의 대화 주인공들이다. 14일 오후 5시 개관기념 대화는 '2005 한.미사진상'을 받은 이상현씨가 '현대미술과 사진의 경계'를 주제로 풀어간다.

"누구나 놀러오세요. 사진 감상은 기본이고 사는 얘기는 덤입니다. 맘 맞는 이끼리 여는 번개 파티도 빼놓지 마세요." 주인장의 초대장은 통크게 국민 모두에게 날아갔다. 02-797-2314.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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