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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자유한국당 5행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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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지방선거가 코앞인데도 자유한국당 추락엔 브레이크가 없다. 이번엔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홍준표 대표의 막말과 여론 역풍을 의식한 후보들의 대립으로 자중지란이다. 공천 갈등까지 겹쳐 4선 의원이 탈당했다. 선거야 끝나 봐야 안다지만 혀를 차는 사람들이 또 늘었다. 여론조사론 보수층 세 명 중 한 사람만이 한국당을 지지한다.

분열된 보수론 선거 하나마나 #서울 단일화로 돌파구 열어야

한국 정치의 기관차로 자부하던 한국당이 이 지경까지 내몰린 건 쇄신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기 때문이다. ‘확 바꾸겠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약속했다. 그러나 인물이든 정책이든 혹은 웰빙 체질이든 무엇 하나 실질적으로 바뀌었다고 느끼기란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주사파 정권임을 국민들에게 알리기만 하면 된다’는 게 예나 지금이나 유일한 칼이다.

어떻게든 정권에 상처를 내고 이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게으름만은 현재 여당의 10년 전 야당 시절을 닮았다. 광우병과 천안함을 놓고 온갖 괴담을 퍼 나르며 왼쪽보다 더 왼쪽으로 달려간 축소 지향의 정치 말이다. 그러니 이명박 청와대를 향한 실망과 분노는 같은 당인 박근혜 대표를 대안으로 떠올렸다. 존재감 없는 야당이었다.

그래도 확실하게 다른 건 있다. 그때 야당은 뭉쳐서 지방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다. ‘친노 폐족’을 선언했던 안희정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에 당선됐다. 야권인 진보는 연대하고 여권인 보수는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으로 갈렸다. 친노는 그렇게 재기의 발판을 만들었다. 4년 전 교육감 선거에선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가 승리했다. 역시 ‘진보 단일-보수 분열’의 선거였다.

재방송으로 가는 선거판이다. 공수가 바뀌었는데도 한국당엔 이번 선거가 야당끼리의 2등 다툼이고, 주류와 비주류 싸움이다. ‘분열=필패’를 한국당이 모르느냐면 그런 건 아니다. 당내에선 ‘지방선거만 끝나면’이란 얘기가 많다.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꽤 있다. 그래야 ‘홍준표 리스크’를 날리고 고장 난 당을 수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냐’고 물으면 ‘결국 홍 대표가 재신임되지 않겠느냐’면서도 더 깊은 수렁으로 향한다.

한국당은 판문점 회담을 들어 보수의 위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한국당의 위기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이 한순간에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보수가 보수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은 깊어졌다. 오른쪽에서 더 오른쪽으로만 달리고, 기득권에만 매달리는 배부른 야당을 보수의 구원자로 생각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

한국당은 지난해 ‘자유한국당’을 내걸고 ‘5행시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기 밥그릇을, 유난히 챙기니, 한 번도, 국민 편인 적이 없음은, 당연하지 않은가’를 최우수 수상작으로 자기들이 선정했다. 2년 전 총선 공천 땐 새누리당 대표실 백보드에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는 문구를 내걸었다. 올해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는 슬로건으로 선거를 치르는 중이다.

모두 솔선수범과 희생을 외면하다 몰락했다는 자계(自戒)와 자성(自省)의 뜻이 담겼다. 그래 놓곤 여전히 자기들 잇속만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개혁적인 새 인물도, 보수 혁신의 비전도, 심지어 야권 연대나 후보 단일화도 없으면서 표만 달라니 당내에서조차 ‘아직 덜 망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 한국당이 진짜 이번 선거를 문재인 정권 심판으로 치르겠다면 상징성이 큰 서울에서 후보를 내리는 게 첫걸음이다. 다른 지역으로, 교육감으로 확산시킬 명분이다. 자기희생이 진정성이다. 절대로 부패한다는 절대 권력은 무능하고 분열된 야당이 만든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