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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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실기업의 문제는 두개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는 부실기업이 어떻게 생겨났는가하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부실기업을 어떤 기준으로 정리 했느냐의 문제다.
앞서의 문제는 정부의 정책입안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기업인 자신의 경영부실 일수도 있다. 정부의 정책이 잘못된 것에서 비롯된 부실기업이라면 정책적 보완이나 정책결정자의 문책으로 문제를 결말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근원적인 치유일 수는 없지만 다시는 부실기업을 양산하지 않는다는 준범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정책입안의 시행착오가 빚어내는 경제적 손실이 얼마나 큰가를 정책 결정자들이 똑똑히 알아야할 것이다.
만일 기업인 스스로의 부실경영이나 무책임경영에서 빚어진 부실기업이라면 응당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실기업주는 나몰라라 하고 고개를 돌리면 정부가 달려들어 허겁지겁 다 쓰러져가는 기업을 끌어안고 금융지원이다, 조세감면이다, 은행의 빚 탕감이다, 상환거치다, 이자유예다, 뭐다 해서 있는 수단, 없는수단,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부실정리에 나섰다.
정부의 그와 같은 정책결정은 긍정적인 면도 없지는 않다. 규모가 작지 않은 부실기업이 그대로 방치돼 쓰러질 경우 사회적인 충격이나 그로 인한 경제적 마이너스파급효과와 해외경제에 주는국제적 신인의 손상등은 결코 작은 일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실기업인에 대한 면책사유일수는 없다. 우리는 9천억원 가까운 빚을 진 부실기업인이 지난 총선에서 출마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정치활동을 규제당하지 않았는데 출마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바로 그와 같은 몰염치한 발상에 오늘의 부실기업문제가 잠재해 있는 것이다.
기업의 부채가 우리사회에서 늘 주목의 대상이 되지만 문제는 빚을 지고도 기업을 잘 경영해 그 빚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다 하면 사회적으로 빈축을 살 이유가 없다. 문제의 부실기업들 모양으로 빚은 빚대로 지고 기업은 기업대로 망하면 결국 그 부담은 누구에게 가는가.
은행이 그 뒷감당을 하려면 돈을 더 찍어내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부담은 국민경제에 그대로 전가되어 인플레요인이 되는 것은 정한 이치다. 이러나 저러나 국민의 어깨에 짐이 되고 만다. 부실기업문제가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는 새삼 따져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런 모순과 심각성 때문에 우리는 그 동안 부실기업 얘기만 나오면 쉬쉬하고 덮어두려고만 한 정부의 자세를 비판했었고, 부실기업 백서를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해 왔었다. 뒤늦게 정부는 국회의 요구에 마지못해 부실기업 전모를 발표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석연치 않은 것은 부실기업정리의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연관으로 특혜를 준 것 같은 방식의 정리가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또 정리된 부실기업이 여전히 소생의 기미는 없이 부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경우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제2의 부실기업 정리를 통해 국민이 이중의 부담을 지는 일은 과연 없을 것인가.
우리는 부실기업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답답하고 불쾌하고 한심하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시각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뒤늦은 일이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새겨야하며 그런 교훈의 뜻은 다시는 이와 같은 모순과 과오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그런 관점에서 부실기업의 문제를 결말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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