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교수 10%가 정부 연구지원 82% 독식…젊은교수 '소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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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원이 실험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중앙포토]

한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원이 실험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중앙포토]

“정부 연구비 지원은 일종의 불공정 게임이에요. 젊은 교수가 연구 지원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죠.”
수도권 한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 A씨의 고민은 돈이다. 30대 후반 비교적 이른 나이에 교수가 돼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고싶지만, 연구비가 부족하다. 석·박사급 연구원을 1명 쓰려면 연간 적어도 2000만원 이상이 필요하고 실험 장비를 마련하려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든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는 대부분 연구 실적이 많은 중견급 교수들 차지다. 그는 “젊은 교수가 살아남으려면 자기가 하려는 연구는 접어두고 중견 교수들의 연구에 참여하며 실적을 쌓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학교수들에게 지원하는 연구비가 일부 교수에게 편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서울대 등 몇몇 대학의 경력 많은 중견급 교수들에게 지원이 쏠리면서 젊은 교수들은 지원에서 소외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연구재단은 최근 정부가 4년제대 교수에게 지원한 연구비를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정부가 지원한 연구비는 4조2453억원으로 교수 1인당 5700만원 정도다. 그런데 연구비를 많이 받은 상위 10% 교수 7446명에게 전체 연구비의 82%에 달하는 3조4834억원이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 교수는 1인당 4억6800만원을 받았지만, 나머지 90%의 교수들은 1인당 연구비가 1100만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자료:한국연구재단. 2016년 정부연구비 분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료:한국연구재단. 2016년 정부연구비 분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구비를 독식한 상위 10% 교수 7446명의 평균 나이는 51세. 보통 ‘신진 연구자’로 분류되는 39세 이하는 397명으로 5% 뿐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39.2%, 경기가 11.5%로 수도권 소재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가 절대다수다.

이는 큰 연구비가 걸린 사업이 서울 소재 유명 대학의 ‘거물급’ 교수들에게만 집중되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정부가 형식상으로는 연구 사업을 공모하지만, 연구과제를 선정할 때부터 거물급 교수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많은 중견 교수가 연구비를 따낼 가능성이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구자 선정 방식이 젊은 교수에게 불리하다는 해석도 있다. 한 충청권 대학교수는 “정부가 논문 실적 같은 수치를 따져 연구자를 선정하는데, 학계에 오래 있던 중견 교수가 논문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한 ‘안전한 조치’로 중견 교수를 선정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자료:한국연구재단. 2016년 정부연구비 분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료:한국연구재단. 2016년 정부연구비 분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서 젊은 교수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연구비는 중견 교수보다 훨씬 적다. 연구재단 분석에 따르면 39세 이하 교수의 1인당 평균 연구비는 2700만원으로 전체 교수 1인당 연구비인 570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50대 교수들은 1인당 평균 6900만원을 지원받았다. 대학별로도 편중이 뚜렷했다. 국내 227개 4년제 대학 중 서울대·연세대·고려대·KAIST·성균관대 등 5곳이 정부 연구비 중 30.5%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노벨 과학상읕 수상할만한 성과가 나오려면 젊은 교수가 일찌감치 장기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부가 신진 연구자 지원금을 높이고 각 사업별로 신진 연구자 선정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배영찬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부총장은 “국내 젊은 교수들의 역량이 상향 평준화됐음에도 지방의 젊은 교수들은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 30대에 생애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면 지금보다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형 한국연구재단 연구원은 “똑같은 연구비를 지원했을 경우 30대 교수의 성과가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정부 투자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지나친 연구비 쏠림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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