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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권필의 에코노믹스] 빛공해 속 어둠의 가치…별 보며 힐링하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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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Eco-logy)과 경제학(Eco-nomics)이 같은 어원(Eco)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에코(Eco)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단어로 ‘집’을 뜻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이 인간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에코노믹스]는 자연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경북 영양군 밤하늘공원에서 바라본 밤하늘. [사진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경북 영양군 밤하늘공원에서 바라본 밤하늘. [사진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의 밤하늘보호공원.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차 트렁크에서 부품을 꺼내 조립하더니 어느새 2m 높이의 천체망원경이 완성됐다.

그리고 또 기다림의 시간. 기상예보와 달리 하늘을 가리는 구름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일부 남아있던 가로등까지 꺼지자 주변에는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조립해 만든 대형 천체망원경. [사진 천권필 기자]

조립해 만든 대형 천체망원경. [사진 천권필 기자]

자정이 조금 넘었을까. 하늘을 덮었던 구름이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밤하늘을 가득 메운 수많은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와~” 하는 탄성을 쏟아냈다.

“잘 보면 큰 은하와 작은 은하가 붙어 있을 거예요. 아빠와 아들 같다고 해서 ‘부자 은하’라고 불러요.”

별을 보러 경기 안성시에서 4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왔다는 김철규 씨가 북두칠성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망원경 렌즈를 들여다보니 그의 말대로 소용돌이 모양의 두 은하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는 “요즘엔 강원도 산골에 가도 풍력 발전기의 불빛 때문에 별을 관측하기가 힘들다”며 “별을 보기 위해 먼 곳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다”고 웃었다.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며 움직이다가 금새 사라졌다. 별똥별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 살면서 밤에 별을 본 때가 언제였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어둡게…오지의 역발상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사진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사진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육지 위의 섬’으로 불리는 경북 영양군은 산으로 둘러싸인 대표적인 오지(奧地)다. 오죽하면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질 것을 대비해 마리당 10억 원이 넘는다는 귀한 씨수소를 영양까지 데려다 놨을 정도다.

면적은 서울보다 넓지만 인구는 1만 7443명으로 1개 동보다도 적다. 울릉군을 제외하고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꼴찌다. 교통량이 적다 보니 서울에서는 흔한 신호등도 군 전체에 세 개 밖에 없다. 이곳이 빛보다는 어둠에 익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사진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사진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이런 오지에서도 더 오지가 되는 방법을 택한 곳이 있다. 영양군청에서도 차를 타고 산 속으로 30분을 더 가야 하는 수비면 수하리의 밤하늘공원이다.

이곳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5년에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협회(IDA)에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은 밤하늘의 품질에 따라 골드·실버·브론즈 등급으로 나뉜다. 골드는 환경 오염의 영향이 거의 없는 사막 지역, 실버는 양질의 밤하늘을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곳이 주로 해당된다. 현재 전 세계에 60곳이 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된 미국의 내추럴 브리지스 국립천연기념물. [사진 IDA]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된 미국의 내추럴 브리지스 국립천연기념물. [사진 IDA]

영양군도 보호공원으로 지정받기 위해 수 년에 걸쳐 빛을 철저히 통제해 왔다. 주변에 빛공해를 일으키는 공장이나 상업시설을 절대로 설치하지 않았고, 가로등도 빛이 위로 퍼지지 않도록 했다. 이후 2014년에 1년 동안 밤하늘의 밝기를 측정한 끝에 실버 등급을 받았다.

박찬 영양밤하늘보호공원 연구사는 “이곳에서는 1등성에서 6등성까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다 관측할 수 있다”며 “국제밤하늘협회는 보통 200㎞ 내에 인공적인 시설물이 없어야만 실버 등급을 부여하지만, 천혜의 자연환경 조건과 철저한 관리를 통해 예외적으로 등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사진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사진 영양국제밤하늘보호공원]

어둠을 지킨 덕에 이곳은 국내 최대 반딧불이 서식지 중 한 곳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생태관광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 수도 2014년 4800여 명에서 지난해 8400여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영양군은 방문객들이 헛걸음하는 일이 없도록 ‘별빛예보’를 안내하고 있다.

개발에 대한 규제 때문에 주저하던 수하리 주민들도 이제는 밤하늘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인근 울진군에 풍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자 불빛과 발전 소음이 천체 관측과 반딧불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울진군수를 찾아가 철회 요구하기도 했다.
수하리 주민인 장주봉(69) 밤하늘보존회 부회장은 “개발보다는 보호를 통해 우리 마을이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생태관광지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각한 빛공해, 철새 이동까지 방해

위성으로 본 한국의 빛공해. [사진 NASA]

위성으로 본 한국의 빛공해. [사진 NASA]

어둠의 가치가 주목받는 건 역설적이게도 빛공해가 그만큼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적으로 빛공해가 심한 국가 중 하나다.

2014년 국제 공동연구팀이 전 세계 빛공해 실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국토 면적 중 빛공해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89.4%에 달했다. 주요 20개국(G20) 중 이탈리아(90.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서울의 야경. [중앙포토]

서울의 야경. [중앙포토]

빛공해는 생태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게 철새들의 이동이다. 철새들은 달빛이나 별빛을 보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층 건물의 불빛에 이끌리다가 부딪혀 죽는 일도 벌어진다. 밤에 고층 건물의 불을 끄면 창문에 부딪혀 죽는 새의 숫자를 최고 83%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부화한 아기 바다거북이가 해변의 조명 때문에 방향을 잃고 육지로 기어가다 죽는 경우도 빈번하다.

암 유발 등 건강에도 치명적

야간 조명이 있을 때와 정전으로 조명이 꺼졌을 때의 밤하늘을 비교했다. [사진 IDA]

야간 조명이 있을 때와 정전으로 조명이 꺼졌을 때의 밤하늘을 비교했다. [사진 IDA]

최근에는 빛공해가 사람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생체리듬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어두운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빛에 노출되면 합성이 중단된다. 하지만, 빛공해 때문에 밤에도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면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항산화 물질 생산이 중단돼 암을 유발할 수있다. 야간에 인공조명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여성의 유방암과 남성의 전립선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IDA 한국 챕터를 맡고 있는 정원길 대구한의대 교수는 “어둠은 사람뿐 아니라 식물의 생명력과 면역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며 “영양이 앞으로도 어둠을 계속 지켜나간다면 휴식과 힐링을 위한 생태관광지로서 더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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