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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레와 현대무용, 한국무용을 탐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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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26면

‘카르멘’ vs ‘맨 메이드’

5월 둘째주, 한국무용계 양대 산맥이 맞붙는다. 서울시무용단 ‘카르멘’(5월 9~10일·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국립무용단 ‘맨 메이드’(5월 10~12일·LG아트센터)다. 그런데 두 작품 다 한국적 색채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각각 창작발레의 선구자 제임스전(59)과 현대무용계 기린아 신창호(41)에게 안무를 맡겨 과감한 ‘믹스 앤 매치’를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춤 단체와의 협업이 처음이라는 두 안무가의 이종교배 실험은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

서울시무용단의 ‘카르멘’

서울시무용단의 ‘카르멘’

세상 고민 잊게 하는 열정의 춤바람

‘카르멘’은 비제의 오페라에 기반한 무용극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중인 우리 무용극과 발레 안무가와의 만남이 신선한 시도로 눈길을 끈다. 연습실에서 미리 맛본 바로는 우리 무용극 특유의 정중동 미학 보다는 빠른 템포와 군무의 역동성이 두드러지는데, 열정적인 스페인 음악과 우리의 흥을 조우시킨 결과다. “안무가는 여러 음식을 요리하는 주방장”이라 표현한 제임스 전은 “무용수들에게서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팔의 움직임이나 부채 펴는 것부터 각도와 느낌이 외국인들은 흉내 못내는 한국무용 정서 자체다. 큰 포텐이 터질 것”이라면서 “수많은 발레 버전과 다른 서울시무용단만의 카르멘을 보여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잘 알려진 원작의 결말을 충격적으로 바꾼 것도 차별화를 위해서다. 서지영 작가는 “카르멘이 아니라 호세의 심리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핵심”이라며 “원작은 ‘자유를 속박당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카르멘의 의지가 페미니즘적으로 해석돼 왔지만, 이번엔 호세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게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의상이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취임식 의상 등을 제작해온 양해일 디자이너가 민화 프린트에 프랑스 감성의 색깔을 입힌 화려하고 우아한 의상을 시대상이나 작업과 무관하게 모든 무용수가 착용한다. 제임스 전은 “세상이 힘드니 무대라도 화려하게 볼 수 있게 만들고 싶다. 무용수들이 담배공장 여자들 역할이지만 화려한 색깔로 무대에서 기쁘게 춤추며 관객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캐스팅도 화제다. 카르멘 역에 더블캐스팅된 입단 동기 오정윤·김지은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이번에 첫 주역으로 발탁된 신예들. 제임스 전은 두 무용수에게 서로 다른 색깔의 카르멘을 주문하며 경쟁을 부추겼다. 호세 역을 맡은 서울시무용단의 간판 최태헌은 “오정윤은 집시 특유의 강렬한 매력을, 김지은은 상큼하고 여성적인 매력을 어필한다. 춤 스타일도 서로 달라서 매번 다른 공연을 하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난 누구? 여긴 어디? 같이 고민해 봅시다  

‘맨 메이드’는 현대무용과의 만남답게 철학적이고 개념적이다. 기술발전으로 AI가 인간 고유 영역을 침범할 위기에 처한 지금, ‘만일 로봇이 무용을 창작한다면 과연 아름다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무대다. 가상현실이 혼합된 미디어아트와 아날로그 악기 없이 디지털 신호로만 만든 음악, VR기어를 쓴 무용수가 가상현실·증강현실 보다 더 진화된 혼합현실(MR) 개념까지 펼쳐내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국립무용단의 ‘맨 메이드’

국립무용단의 ‘맨 메이드’

“앞으로의 시대는 인간 이외의 것과 함께 살아가게 될테니 인공적인 것이 무엇인가 심도있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인간미’와 ‘인공미’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만, 사실 자연 이외에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인공’이죠. 그렇다면 결국 인공미도 인간미에 속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인간-인공의 경계 혼합적인 무대를 만들어 봤습니다.”(신창호)

안무는 물론 무대 디자인과 미디어 아트에 모두 적용되는 메인 컨셉트는 시스템의 일시적 오류를 뜻하는 ‘글리치(Glitch)’ 효과, 즉 노이즈다. 인류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수반하고, 오류를 극복하는 백신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진화해 왔다면, ‘지금이 바로 백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반영한 것이다.

개념적으론 한국무용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오히려 한국춤 특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할 테마임을 오픈 리허설에서 확인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발레단의 고정 레퍼토리 ‘No Comment’로 대표되는 신창호 안무 특유의 꺾이고 절도있는 동작과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유려한 호흡과 곡선적 움직임이 작품의 주제인 ‘인간미와 인공미의 경계 혼합’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No Comment’의 팬들이 기대하는 강렬한 군무와 폭발적인 에너지가 한국무용의 DNA를 흡수해 어떤 스타일로 거듭날지가 관전포인트다.

국립무용단과의 만남에 대해 신씨는 “현대무용의 패턴 안에 머물러 왔던 내 안무가 기대 이상으로 영향받고 있다”면서 “한국무용가들은 딱딱하고 기계적인 움직임도 들숨날숨을 조절하면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호흡으로 풀어낸다. 현대무용의 딱딱한 동작을 ‘인간화’ 시키는 매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맨 메이드’의 키 플레이어도 입단 동기인 두 여자 무용수다. 하이라이트인 5장 ‘경계’에서 VR기어를 착용한 이요음과 그녀의 움직임에 제어당하는 박혜지가 다층적인 공간에서 완벽히 싱크로나이즈된 움직임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 혼합’이라는 주제를 구현해낸다. 두 여인 중 어느 쪽이 가상이고 어느 쪽이 실재일까. 관객이 나름대로 추론할 때쯤 벽들이 붕괴되며 무대에 대전환이 일어나면, 다시 인간과 인공의 혼합과 혼란이 시작된다. 무엇을 위한 혼란일까. 객석에서나 알 수 있을 것 같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서울시무용단·국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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