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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 서울, 샌프란시스코 빵에 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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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날씨, 아름다운 경관과 자유로운 사람들.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이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제2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매력이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의 디저트 브랜드들이 잇따라 서울 시장에 진출했다. 이미 해외 유명 디저트들이 쓰디쓴 실패를 맛보고 돌아가야 했던 서울이건만, 지금 샌프란시스코 브랜드들이 서울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뭘까.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개성 강한 식음료 브랜드 잇따라 진출

빵집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과 컨셉트의 빵을 선보이는 ‘아티잔 디저트’의 천국 샌프란시스코의 식음료 브랜드가 잇따라 서울에 진출하고 있다. 사진은 4월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연 ‘비파티세리’.

빵집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과 컨셉트의 빵을 선보이는 ‘아티잔 디저트’의 천국 샌프란시스코의 식음료 브랜드가 잇따라 서울에 진출하고 있다. 사진은 4월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연 ‘비파티세리’.

“서울은 새로운 입맛에 개방적”

지난달 24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안쪽 골목, 코끝을 간질이는 진한 버터 향을 따라 걷다 보니 노란색 문이 나타났다. 가게 안은 활기가 넘쳤다. 오븐에서 갓 꺼낸 빵은 진열대에 올려놓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베이커리 ‘비파티세리(b.Patisserie)’다.
프랑스 브리트니 지방의 전통 디저트에 크루아상의 식감을 더한 퀸아망 등의 디저트로 유명한 곳인데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선 이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늘 매장 앞에 줄이 길에 늘어선다. 비파티세리는 샌프란시스코 본점과 하와이에 이은 세 번째 매장이자, 아시아 첫 매장으로 서울을 선택했다. 미국 본사의 공동 대표인 미셸 수아즈와 벨린다 렁, 두 사람은 오픈 주방에서 빵을 구우며 손님을 맞았다. 미셸은 “서울은 전통의 도시이면서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열려있는 매력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 첫 매장 오픈을 위해 미국에서 온 ‘비파티세리’ 공동 창업주 미셸 수아즈(왼쪽)와 벨린다 렁.

서울 첫 매장 오픈을 위해 미국에서 온 ‘비파티세리’ 공동 창업주 미셸 수아즈(왼쪽)와 벨린다 렁.

층마다 베이커리, 샌드위치 바, 커피 바 등 각기 다른 공간 컨셉트로 구성된 ‘비파티세리’ 매장.

층마다 베이커리, 샌드위치 바, 커피 바 등 각기 다른 공간 컨셉트로 구성된 ‘비파티세리’ 매장.

같은 날, 2호선 홍대입구역에 들어선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호텔 로비엔 샌프란시스코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빵집 ‘타르틴 베이커리(이하 타르틴)’가 문을 열었다. 지난 1월 오픈한 한남동 서울점에 이은 두 번째 국내 매장이다. 2호점은 커피바·토스트바로 나뉘어 있는데 커피바에선 타르틴의 대표 메뉴인 크루아상 및 페이스트리류와 커피를 판다. 반대편에 자리한 토스트바에선 타르틴의 시그니처인 사워도우(천연 발효균으로 만든 반죽)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빵집들의 서울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12월엔 ‘미스터 홈즈 베이크하우스’가 가로수길 안쪽 골목에 문을 열었다. 크루아상과 머핀을 합친 크러핀과 버터·설탕 계란이 들어간 프랑스 빵 브리오슈를 변형한 브리오슈 도넛을 내세워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기몰이를 한 후 해외 첫 매장으로 서울을 택한 것이다. 2017년 5월엔 부산에 4호점을 열고 꾸준히 샌프란시스코의 맛을 알리고 있다.

‘미스터 홈즈 베이크하우스’는 부드러운 브리오슈의 식감을 더한 도넛으로 인기다.

‘미스터 홈즈 베이크하우스’는 부드러운 브리오슈의 식감을 더한 도넛으로 인기다.

2015년 12월 한국에 진출한 ‘미스터 홈즈 베이크하우스’의 대표 메뉴 크러핀.

2015년 12월 한국에 진출한 ‘미스터 홈즈 베이크하우스’의 대표 메뉴 크러핀.

개성 강한 ‘아티잔 디저트’ 천국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의 나라 미국은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의 천국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다르다. 미국에서도 건강하고 개성 있는 요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우선 지리적 위치에 그 비결이 있다. 바다와 인접한 데다 농업이 발달해, 신선한 해산물과 제철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셰프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천국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 정보통신기술의 중심지로 고소득자가 많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타르틴 베이커리’의 두 번째 매장인 메뉴 팩토리. 레스토랑 겸 베이커리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타르틴 베이커리’의 두 번째 매장인 메뉴 팩토리. 레스토랑 겸 베이커리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로컬 푸드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지역별로 나누어 해당 지역 내에 체인점을 오픈하는 것을 제약하는 정책 등을 시행하며 로컬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의 커뮤니티 개발 매니저로 샌프란시스코에 거주 중인 신경희씨는 “로컬 푸드에 대한 적극적인 소비와 시와 기업들의 지원이 로컬 브랜드가 꾸준히 성장하는 이유다. 특히 소득 수준이 비교적 높은 소비자들이 많은 도시로, 이들은 로컬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에서 가치를 느낀다”며 “그 중에서도 빵이나 커피는 가장 쉽게 자주 접근할 수 있는 소비재”라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디저트 브랜드들의 성공 비결 뒤엔 파인다이닝의 성장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할 당시 개성 있고 건강한 수제 아이스크림에 반해 2011년 홍대앞에 수제 아이스크림 전문점 ‘펠앤콜’을 연 최호준 셰프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셰프들이 독립해 자신만의 가게를 열면서 샌프란시스코의 디저트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 셰프들은 정식 매장에 앞서 팝업 매장으로 고객의 반응을 살펴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비파티셰리의 베이커 벨린다 렁이 대표적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키운 신선한 식재료로 요리하는 레스토랑 ‘개리 댄코’에서 페이스트리 셰프로 8년간 근무한 그는 그곳을 나와 6~7곳의 레스토랑에서 팝업을 열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의 대표 메뉴이자 비파티세리의 시그니처인 퀸 아망도 이 과정에서 완성됐다. 벨린다는 “내가 레스토랑에서 독립했던 2000년대 중반부터 다른 레스토랑의 페이스트리 셰프들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비파티세리’ 매장 앞은 퀸아망 등 이곳의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늘 길게 줄이 늘어선다.

샌프란시스코 ‘비파티세리’ 매장 앞은 퀸아망 등 이곳의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늘 길게 줄이 늘어선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는 개성 강한 ‘아티잔(artisan·장인)’ 디저트의 천국으로 꼽힌다. 샌프란시스코 관광청을 홍보하는 조현영 대리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나는 최상급 품질의 커피들과 다양한 이민자들로 인해 발달한 미식문화 덕분에 타르틴이나 비파티세리 같은 유명 베이커리들과 블루보틀·피츠커피·필즈커피·부에노 비스타 등의 소문난 커피 브랜드들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벨린다도 “샌프란시스코는 빵집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과 컨셉트의 빵을 내놓으며 고유의 스타일을 만들어왔다. 선의의 경쟁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로컬 베이커리가 더욱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빵과 단짝인 커피와 함께 오다

한국은 해외 디저트 업계에선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든 곳으로 꼽힌다. 실제로 수많은 해외 브랜드들이 한국 진출 1~2년 만에 매장을 철수했다. 게다가 해외 유학파들과 국내에서 내공을 쌓은 셰프들이 잇따라 자신만의 윈도베이커리(개인 빵집)를 열고 수준급의 빵을 합리적 가격에 선보이면서 해외 브랜드 인지도만으로 롱런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그런데도 샌프란시스코발 베이커리에 대한 전망은 나쁘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아티잔 베이커리인 ‘타르틴 베이커리’는 지난 1월 해외 첫 매장이자 서울의 첫 매장으로 서울 한남동을 선택했다. 4월에는 서교동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사진은 한남동 플래그십 매장.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아티잔 베이커리인 ‘타르틴 베이커리’는 지난 1월 해외 첫 매장이자 서울의 첫 매장으로 서울 한남동을 선택했다. 4월에는 서교동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사진은 한남동 플래그십 매장.

우선 너무 달거나 딱딱한 식감을 싫어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타르틴은 식사 빵, 비파티세리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크루아상이 대표 메뉴다.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는 “최근 외식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중에서도 디저트 시장은 혼자 성장하고 있다. 특히 과한 단맛으로 한국 시장 진출에 실패했던 기존의 유명 브랜드와 달리 최근 한국에 진출한 샌프란시스코 브랜드들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맛과 식감을 벗어나지 않은 만큼 성공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고객을 위한 해외 브랜드들의 노력도 더해지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타르틴은 대표 메뉴인 ‘사워도우’를 낯설어 하는 한국 고객을 위해 이를 활용한 샌드위치 등의 메뉴나 막걸리·잣을 첨가한 호밀빵 한남브레드 등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개발했다. 1호점 오픈 당시 타르틴의 본사 대표인 채드 로버트슨은 “한국의 다양한 식재료들을 흥미롭게 공부하고 있다. 제철 농산물을 활용한 새로운 빵을 계속해서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파티세리’ 서울 3층의 커피바. 이곳에선 사이트글라스의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비파티세리’ 서울 3층의 커피바. 이곳에선 사이트글라스의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유명 커피 ‘사이트글라스’의 공동 창업주인 저스틴(왼쪽)과 제라드 모리슨 형제.

샌프란시스코 유명 커피 ‘사이트글라스’의 공동 창업주인 저스틴(왼쪽)과 제라드 모리슨 형제.

한국 외식업계의 큰 축으로 자리한 커피도 빼놓을 수 없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약 11조 7397억5000만원으로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어섰다. 밥은 걸러도 커피는 거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도 ‘커피의 도시’로 유명한데 타르틴과 비파티세리 모두 샌프란시스코의 커피 브랜드와 함께 서울에 왔다. 타르틴은 블루보틀과의 합병 실패 이후 자체 커피 브랜드인 ‘커피 메뉴팩토리’를 만들었고 이를 한국 시장에서도 똑같이 판매하고 있다. 비파티세리 코리아는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커피로 꼽히는 사이트글라스를 함께 들여와 기존 브랜드와 차별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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